우리의 머리와 우리의 입으로 과학을 읽고 되는대로 멋대로 떠들어보는 세미나, 과학만담 세미나 두 번째 시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근 두 달 간 온라인으로 만나면서,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지만 왠지 재밌는 것 같은 낯선 물리학 세계를 맛보았는데요. 결코 순한 맛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맵다고 해서 재미없으리란 법은 없죠. 저희는 ‘이해됐다, 유레카!’ 하는 느낌표보다는 ‘뭔 소리야, 대체?’하는 물음표를 훨씬 더 많이 챙겼습니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보다 대단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물음표로 애장하고 용어들에 조금이라도 친숙함을 갖는 것이 우리의 공부에 유용할 거라 생각됩니다ㅎㅎ
마지막 시간에는 영상자료를 함께 보고 토론했어요. 카오스(KAOS) 사이언스 재단에서 제작한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과 카를로 로벨리의 책을 리뷰한 시간에 대한 영상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읽고 저희에게 가장 와 닿았던 주제가 아무래도 시간(혹은 시공간)인 것 같아서 그렇게 골라보았습니다. 척도와 보편성에 대한 이야기도 그랬고, 물리학의 세 기둥을 말하는 대목도,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 있는 대안 이론들을 소개할 때도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시간에 대한 관점들이었습니다. 시간은 무엇일까? 시간은 모두에게 공통된 속도로 흐를까? 개체들과 별들과 은하들 바깥에서 돌아가는 우주시계 같은 것일까? 왠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럼 어떠한 방식으로 시간이란 것이 성립되는지는 만만치가 않지요. 저희 각자가 배우고 있는 분야인 불교, 주역, 예술에서 시간은 어떻게 이야기될까요? 거기서 이야기되는 시간의 독특과 풍성함을 더 잘 이해해보기 위해서라도, 현대과학에서 시간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요것을 기반 삼아 시간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시간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존재 이후에 생기는 것이냐 존재 이전에 있는 것이냐 하는 논쟁을 거쳐왔다고 합니다. 공간과 물질이 있을 때에야 ‘거리’라는 개념이 생기듯 시간 역시 관계와 배치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아니면 직교좌표처럼 존재하는 것들 위에 무대처럼 선험적인 형식으로 주어져 있는가의 문제 말이죠. 상대냐 절대냐의 문제입니다. 이 구도는 근대에 이르러 각각 라이프니츠와 뉴턴으로 대표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었죠. 과학은 19세기까지 그저 물체의 기계적 운동을 묘사할 뿐이었고, 여기서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든 미래에서 과거로 가든 똑같았습니다. 작용반작용하는 세계는 되감아도 똑같습니다. 이것을 시간에 대한 대칭이라고 합니다. 과학은 시간이 미래 쪽으로 흘러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제시할 방법이 없었죠.
그런데 시간이 한 쪽으로 흐른다는 사실, 즉 운동에는 돌이킬 수 없이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 개념이 열역학의 엔트로피법칙이었습니다. 전체 계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방향을 갖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볼츠만 이야기가 나오면서, 거시계에서 운동의 흐름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미시계에 대한 우리의 무지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양자세계에서 운동은 대칭이어서(가역적이어서) 시간의 방향성은 없기에, 엔트로피는 사실 우리 무지의 소산이라는 것인지 잘 잡히지 않더라구요. 이 부분은 강의 때 질문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이 외에 ‘시간은 방향을 갖는다’의 근거로 제시된 것은 빛 화살, 블랙홀 화살, 심리적 화살, 우주(팽창) 화살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대칭적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사실 엔트로피 화살 역시 제안된 지 90년이 지났지만 실험이나 증거가 없기에 시간의 흐름을 담보하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필연적으로 방향을 갖는다는 근거가 없었던 것이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이 절대적이지도 않고 독립적이지도 않음을 증명합니다. 우선 시간은 상대적인데, 이는 빛의 속도가 일정하기에 내 주변에서 운동하는 것들의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시간은 사물, 즉 물질과 에너지로부터 별개로 독립된 무엇도 아닙니다. 시간은 중력장이 강한 곳, 다시 말해 시공간 곡률이 커서 가속도 운동이 큰 상황일수록 느려집니다. 물질 혹은 질량과 시공간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인데, 역시 직관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죠. 두고두고 공부해보며 곱씹을 대목입니다.
양자역학은 이제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불연속적으로 덩어리진 양자라고 말합니다. 플랑크 시간 초와 플랑크 길이 cm가 그 최소단위죠. 마치 점묘화처럼 시공은 알갱이들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렇게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은 곧 양자역학의 특성들인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론과 양자론은 각각 시간의 방향성에 대한 두 근거를 내놓습니다. 상대론은 우주론적 화살을 지지합니다. 빅뱅 이래로 우주가 팽창하고 시공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죠, 시간의 방향은 바로 이 팽창에 있습니다. 양자론의 근거는 측정입니다. 측정은 앞뒤를 바꿀 수 없습니다. 마치 두 행렬의 곱셈에서 앞 뒤 순서가 달라지면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없듯, 미시계의 불확정성은 한번 측정되어 결을 잃고 나면 그 이전의 중첩상태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측정 이후의 결과는 측정 이전에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측정 후에야 알 수 있죠. 바로 여기에서 방향이 생겨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쪽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이것이 ‘비가환성’에 의한 시간 흐름입니다. 비가역성과 헷갈립니다. 저희는 한참을 고민했고 결국 이 역시 질문으로 남겨두자고 했죠(검색해보니 비가환성noncommutative이라는 개념은 정말 복잡하네요...). 어쨌든 엔트로피 화살에서 제시된 것처럼 ‘운동의 비가역성’에서는 열의 손실이 방향을 결정하고 양자역학의 화살에서의 ‘측정의 비가환성’은 거시계로 나타나는 예측불가능성이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양자역학에서 제시되는 대로라면 시간은 예측되지 않는 결과, 즉 우리의 무지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혼미한 채로 가장 최신 이론이자 상대론과 양자론의 통합 후보자로 거론되는 고리양자중력 이론의 시간관으로 왔는데요. 여기서는 시공간은 플랑크 규모의 고리로 양자화되어 있어서 각각의 고리들이 연결되고 모여서 공간이라는 장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따지면 시간은 그 고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에 대해 우리가 부여한 환상이지 우주 어떤 곳에서도 시간은 흐르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역시 복잡한 수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영상들에서 다뤄진 않았습니다. 저희는 시간이 양자화되어 있고 그렇기에 사실상 흐르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두고두고 이해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이렇게 6주에 걸친 물리학 더듬기+만담하기 세미나가 마무리되었네요! 머리에 쥐가 나고 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세계였지만 그래도 저는 그 막막함이 주는 재미도 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다음번에 도전할 때에는 어디서 들어는 본 이름들일 테니 겁은 덜 먹겠죠? 샘들 덕분에 가장 핫하고 또 가볍지만 묵직한 책 한 권을 나름 꼼꼼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해의 문제는 별개지만요.ㅎㅎ 아직 물리학을 사랑하게 되진 않은 것 같지만, 두고두고 돌아오게 될 책인 것 같습니다. 7월 15일 금요일 7시에 개강하는 과학강의를 기다리며 마지막 후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