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힘으로 책 한 권 읽고 떠들어 보자’는 세미나, 과학만담 세미나 시즌3가 시작되었습니다. 물리학 강의의 에프터 세미나(A/S)라고 할 수 있는데요. 단 3회로 이뤄져 있어서인지, <물질의 탐구> 한 권을 읽는데도 분량이 꽤 묵직했습니다. 특히 물리학의 역사이다보니, 첫 번째 시간의 범위에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20세기 초 아인슈타인까지 쭉 들어가게 되었네요. 역시나, 매 시간마다 ‘아, 셈나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내용이 알찼습니다. <물질의 탐구>라는 제목답게, 이 책은 고대 원자론자들(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와 근대 기계론자들(세네르트, 보일, 돌턴, 뉴턴)의 논의를 중심에 두고, 다른 한편에서 철학자라고 불리는 자들(로크, 버클리, 흄, 칸트)의 실재론의 특징들도 살짝 소개해주면서 꼬불꼬불 나아갑니다. 그래서 풍부하게 읽히기도 했고 조금 더 아리송해지는 부분들도 많았는데요. 어쨌든 무척 친절하고 유용한 책인 건 분명합니다! 저희가 떠들었던 이야기 몇 개를 후기에 남겨보겠습니다.
‘단단함’이라는 물질의 특성
경희샘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왜 물질이라고 하면 우리는 ‘단단함’을 떠올리게 될까요? 가령 17세기의 철학자 존 로크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그는 우리가 물질을 아무리 섬세하게 쪼갠다 하더라도 모양, 단단함, 확장성, 운동성 같은 고유의 기본 성질을 지닌 것이 남는다고 주장했다.”(44쪽) 또한 서문에도 이런 구절이 있었죠.
“지금 당신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든 간에, 그것이 ‘어떤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물질은 ‘단단함’이라고 부르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질량’을 가지고 있다.”(프롤로그)
물질의 근본적 특성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 앞에서 저희는 보통 단단함, 공간 차지, 질량을 갖는다 등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액체처럼 흐르는 것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보다 세밀하게 나눠보면 어쨌든 물질이란 밀도를 갖고 공간을 점유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어떤 과학자나 철학자도 물질 혹은 존재의 특징을 물렁물렁함이나 희끄무레함으로 잡지는 않았습니다. 왤까요? 물렁하다는 것, 단단하지 않다는 것은 곧 불확실하고 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간상의 어디에 얼마만큼을 차지하는지 확정할 수가 없죠. 그런 건 있다거나 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물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경숙 선생님은 물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존재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물질이라면, 그게 ‘있어야’ 할 것이고, 있다는 것은 어느 지점엔가 파악 가능한 채로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만 보인다거나,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면 유령이나 환영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물질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로 저희는 ‘단단함’이라는 특성이 괜히 요청된 게 아닌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순간적으로든 아주 작은 원자 수준에서든 물질로 존재하는 것은 단단해야 합니다. 이 속성이 없으면 물질이 있다고도 할 수 없죠. 이 단단함이 세상의 모든 물렁물렁해보이는 것을 구성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움직이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죠. 곧 단단함이라는 물질의 근본 속성이 모든 역학을 가능케 합니다.
이 단단함이라는 것은 결국 입자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입자냐 파동이냐의 논쟁이 중요한 것은, 물질이 파동이라면 우리에게 보이는 이 현상들을 설명할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인듯합니다. 지금까지도 모든 물리학의 기초는 ‘하드론’(hadron : 쿼크, 렙톤, 양성자, 중성자 등의 강입자)입니다. 표준모형에 해당되는 알갱이들이죠. 이것들은 단단합니다. 질량을 갖습니다. 그래서 하드론이죠. 아인슈타인이 E=mc2이라는 공식으로 이런 하드론이 에너지(단단함도, 공간적 점유성도, 질량도 없는)로 변환될 수 있음을 정리했을 때의 충격이 컸던 이유는, 기존까지의 물리학의 토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원자라는 개념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다음은 자비의 질문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건 광고에서건, 세상이 원자로 되어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듣게 됩니다. 책에서도 등장하는, 작고도 동그란 원자. 유치원생에게도 그건 상식이죠. 그런데 그 상식은 어떻게 정립되었을까요? 다른 시대 사람들도 그게 상식었을까요?
저희가 읽은 책의 서두에는 고대 그리스 원자론자들이 관찰, 논리, 상상력을 통해 경험 속에서 원자의 개념을 형성해내는 과정이 잘 나옵니다. 신을 소환하고 싶은 마음을 미뤄두고 변화하는 자연을 관찰해보면, 어떤 것도 무에서 나오지 않고, 어떤 것도 무로 돌아가지 않고, 사물들이 다양한 형태와 성질로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설명하는데에는, 보이지도 않고 관찰되지도 않지만 결코 쪼갤 수 없는, 단단한 기본 구성 단위를 상정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원자들이 허공에서 결합 해체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효과로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원자론은 직접적인 확인은 어려워도 무모한 믿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고대 원자론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습니다. 즉 현상들은 원자가 아닌 다른 가설들로도 얼마든지 설명되었습니다. 원자론은 다른 가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즉 원자와 허공이 존재해야만 설명되는 현상이 관찰되어야만 받아들여질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근 2000년 동안 사람들은 기호와 편리에 따라 원자론을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7세기 보일의 J자 관 수은 실험을 계기로 입자설이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공기가 입자와 허공으로 이뤄져 있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었던 것이죠. 이후 아인슈타인이 브라운 운동에서 원자의 크기를 계산하고, 나중에는 X선으로 원자를 촬영하기까지 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원자의 이미지가 자리잡히게 되었습니다.
에테르의 존재/비존재 증명은 왜 중요한가?
“1856년, 결론은 피할 수 없었다. 빛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빛은 전자기파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모두 결정적인 증거인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서 또 다른 문제가 튀어나온다. 빛이 정말로 파동 현상이라면, 빛이 지나가는 ‘매질’은 무엇인가? 맥스웰은 우주 전체를 ‘에테르’가 채우고 있으며, 빛은 에테르를 통과해 나아간다는 가정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만일 에테르가 정지된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이것이 원칙적으로 절대운동을 측정할 수 있는 배경인 기준계(‘컨테이너’)가 된다.”(86쪽)
저희가 들었던 과학 강의에서는 거의 매 시간 ‘마이컬슨과 몰리의 에테르 증명실험의 실패’에 대해 배웠습니다. <물질의 탐구>에서는 간섭계를 이용한 그 실험의 개요가 큰 그림과 친절한 설명으로 나오는데요. 저희는 이 에테르라는 개념이 어떤 중요성을 가졌었는지 정리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여기서 뉴턴의 주장이 반박되는 동시에 옹호되어서 좀 헷갈렸습니다.
첫째, 에테르는 파동처럼 보이는 빛이 이동할 수 있는 매질일 수 있습니다. 맥스웰은 빛이 전자기파라는 것을 밝혀냅니다. 왜냐하면 빛은 서로 간섭하면서 보강되거나 상쇄되는 현상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파동의 성질이지요. 이것은 빛이 입자로 되어있다고 주장했던 뉴턴의 생각과는 상반된 결과입니다. 두 번째로 에테르는 운동의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공간 전체가 에테르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비록 그것이 무형이기는 해도 운동하는 모든 물체에 대한 제3자적 관점이자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뉴턴 역학이 전제했던, 상대적 운동의 배경이자 캔버스로서의 절대적 공간과 절대적 시간이 될 것입니다. 즉 에테르는 세계의 컨테이너인 것이죠.
이러한 이유에서 물리학자들은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을 더 이상 과거의 신학적 마술적 냄새가 나는 ‘있지만 알 수 없는’ 무형의 것으로 남겨둬선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접적인 효과를 검출해낼 실험을 기획합니다. 그 결과는, 에테르는 없고 따라서 빛의 속도는 어느 상황에서나 일정하다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세워집니다.
한편 빛은 어떻게 되었냐구요? 매질이 없다면, 파동인 빛은 어떻게 전달되는 걸까요? 여기서 빛의 미스테리는 여기서 나옵니다. 빛은 입자이기도 한 것이죠. 입자이기에 매질 없이 움직입니다. 하지만 파동이기도 합니다. 하. 이 이상한 문제는 다음번에 더 알아보기로 해볼게요.
상대성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질량의 문제도 더 따라가봐야 할 것 같구요. 그래서 다음 주에 덧붙여서 해보기로 할게요! 매번 느끼지만, 헤매는 듯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나봐요... 그래도 뭐가 됐든 계속 가보는 것으로요!
다음 주에는 <물질의 탐구> 11장까지(~209쪽) 읽고 질문거리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