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본문보다 주석이 차지하는 영여깅 더 많은 듯한 <에픽테토스 강의>입니다.
그래서인지 진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달려나가고 있네요 ㅎㅎ. 3주만에 1권을 다 읽었습니다...!!
본문을 다 읽고 나면, 해제 중에 중요한 부분과 주석에서 중요한 부분을 함께 읽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 범위에서는 자살에 대한 우아한(?) 이야기도 등장하고(문은 열려 있다!),
인상의 올바른 사용에 관한 문제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적인 선개념을 자연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개별적인 경우들에 적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네. 나아가, 있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다른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네. 즉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는 의지(프로하이레시스)와 그 의지에 의존하는 모든 행동이 있으며,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에는 우리의 신체와 신체의 부분들,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유물, 부모, 형제와 자매, 자녀, 조국,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다네."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을 서로 밀치고, 스스로 답답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명심하라. 즉,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밀어내고,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네."
저는 이번에는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새삼스럽지만, 무엇이 우리 자신에게 달린 일인지를 배우고 그것에만 힘쓰라는 것만큼 윤리적인 가르침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네요.
그럼 필사를 만나보시겠습니다~!
16장 섭리에 대하여
우리가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신성을 찬미하는 찬송을 부르고, 신성을 찬양하며, 신이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해야만 하겠는가!(156쪽)
18장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화내지 말아야만 한다는 것
‘내 겉옷을 잃어버렸어요.’ 물론, 너는 겉옷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머리가 아파요.’ 글쎄, 너는 뿔 속에 고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지? 그럼, 왜 짜증을 내는 거지? 우리의 손실과 고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인데도 말이네.(172쪽)
19장 참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가
본성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자신 이외의 다른 무언가에 의해 혼란스럽게 되거나 방해받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네. 오히려 그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 자신의 판단이네.(177쪽)
제우스는 이러한 자연 본성을 가진 이성적인 동물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공통의 이익에 무언가를 기여하지 않는 한 어떤 그 자신의 고유한 좋음들을 얻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네.(179쪽)
20장 이성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고찰하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이성을 어떤 목적을 위해 자연으로부터 받았던 것인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대로 인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이성 그 자체는 무엇인가? 어떤 종류의 성질을 가진 인상들로 구성된 모음이다. 따라서 이성이 그 자체를 고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본성상 적합한 것이다. 또, 지성은 어떤 대상을 고찰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가? 좋은 것과 악한 것, 그 어느 쪽도 아닌 것에 대해. 그렇다면 지성 그 자체는 무엇인가? 좋은 것. 그리고 지성의 결여는 무엇인가? 나쁜 것. 따라서 너는 지성은 필연적으로 그 자체를,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것을 고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186쪽)
네가 좋음과 나쁨에 관해 얼마나 적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들에 관해 얼마나 열심히 관심을 기울이는지를 알고 싶다면, 한편으로는 육체적인 맹목과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의 잘못에 비해 네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네가 좋음과 나쁨의 문제와 관련하여 마땅히 가져야 할 감정을 지니는 것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네.(187~188쪽)
철학자들의 가르침에서 가장 주요한 이론 자체는 아주 간략하게 말해질 수 있다네. 그것을 알고 싶다면, 제논의 작품을 읽으면 좋을 것이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의 목적은 신들을 따르는 데 있고, 좋음의 본질은 인상의 올바른 사용에 있다’라고 말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는가? 무엇보다, ‘신은 무엇이며, 인상이란 무엇인가? 또 개인에게서 본성은 무엇이며, 전체에서 자연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논의는 이미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네.(188~189쪽)
21장 선개념에 대하여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적인 선개념을 자연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개별적인 경우들에 적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네. 나아가, 있는 것들 중에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다른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구별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네. 즉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는 의지(프로하이레시스)와 그 의지에 의존하는 모든 행동이 있으며, 반면에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에는 우리의 신체와 신체의 부분들, 마찬가지로 우리의 소유물, 부모, 형제와 자매, 자녀, 조국,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다네. 그러면 우리는 ‘좋은 것’을 어느 쪽에 두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떤 종류의 실재에 적용해야 하는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197쪽)
24장 곤경에 맞서 어떻게 도전해야 하는가?
인간들이 어떤지를 드러내는 것은 곤경이네. 그래서 앞으로 어떤 곤경을 겪을 때마다, 체육장의 레슬링 훈련 조교와 같이, 신은 젊은 강인한 상대와 대처하게 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라.(205~206쪽)
그[디오게네스]는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부끄러운 것이 없으니까’라고 말했고, 또 ‘나쁜 평판은 미친 사람들이 만드는 공허한 소음이다’라고 말했네.(207쪽)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이네.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이들보다 더 겁먹지 말고, 아이들이 놀이가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 ‘나는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너에게 그렇게 보일 때, ‘나는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을래’라고 말해야만 하고, 또 떠나가야만 하네. 허나, 네가 머문다면 신음을 멈춰라.(211쪽)
25장 동일한 주제에 관하여
이상의 모든 것이 참이고, ‘인간의 좋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나쁨은 그의 의지(프로하이레시스)에 있으며, 그 밖의 모든 것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할 때, 우리가 어리석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단지 연극의 역할을 취하는 것도 아니라면, 왜 우리는 여전히 걱정을 하고,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심각한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어떤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한다. 또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권한에 대해서는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전히 걱정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가?(212~213쪽)
그러면 언제까지 우리는 인생의 이 지시를 지키고, 게임(놀이)을 망치지 않아야만 하는가? 게임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 사토르날리아 축제에서 왕은 추첨으로 선출되네. 그들이 그 게임을 하기로 결정했으니까 말이네. 왕은 명령을 내린다. ‘너는 마시고, 너는 포도주를 섞고, 너는 노래하고, 너는 가고, 너는 오라.’ 나는 이 놀이를 망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네. ‘자, 너로서는 불행의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하라.’ 나는 받아들이지 않네. 누가 나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214~215쪽)
이러한 다양한 관점 중에서 판단하는 것은 너의 몫이네. 다만, 네가 나쁜 상태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무겁거나 괴로운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게나. 누구도 너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지. 누군가가 집에 연기를 피웠는가? 너무 많지 않으면, 나는 머물 것이네. 지나치게 많다면, 나는 집을 떠나갈 것이네. 우리는 문이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또 굳게 명심해야만 하니까 말이네.(217쪽)
만일 내가 내 보잘것없는 몸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나는 ‘나 자신’을 노예로 삼는 것이네. 내가 내 보잘것없는 소유물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마찬가지로 나는 노예가 되는 것이네. 그렇게 함으로써 즉각 내가 어떤 힘에 의해 사로잡히게 될 수 있을지를 나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네. 뱀이 자신의 머리를 움츠릴 때, 내가 ‘지키려고 하는 그 부분을 쳐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도 또한 네가 가장 보호하고 싶은 바로 그 지점을, 네 주인이 공격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만 하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네가 더 이상 누구에게 아첨하고 누구를 두려워하겠는가?(219쪽)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을 서로 밀치고, 스스로 답답해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명심하라. 즉,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밀어내고, 우리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네. 그렇다면 사람을 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돌 옆에 서서 돌을 욕해 보면 된다. 어떤 효과를 만들어 낼까? 사람이 돌처럼 듣는다면, 너를 욕하는 자가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욕하는 자가 욕먹는 사람이 약점을 이용해 욕한다면, 그때는 뭔가 얻는 바가 있을 것이네. ‘그놈[옷]을 찢는 거야.’ 왜 그놈이란 마린가? 그의 겉옷을 잡고 찢어 버리면 되는 것이네. ‘내가 너에게 행패를 부렸다.’ 그것이 너에게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랄게!(220쪽)
26장 삶을 위한 규칙은 무엇인가?
이것이 철학의 첫 번째 단계이네. 즉 ‘자신의 지도하는 중심’의 상태를 깨닫는 것. 사람이 그것이 약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그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것을 사용하라고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그러나 실제로는 한 입도 삼킬 수 없는 사람들이, [책방으로] 가서 전체 논고를 사서 먹어치우기 시작하는 셈이네. 그 결과로 그들은 토하거나 소화 불량으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네. 그런 다음 배앓이를 하고, 설사를 하고, 열이 나게 되는 것이네. 그들은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시작했어야만 했네. 그렇네, 이론적인 문제에서 무지한 사람을 논박하기란 쉽지만, 인생에 관련된 문제들에서는 아무도 기꺼이 자신을 논박에 내맡기려고 하지 않으며, 또 우리는 자기 자신을 논박해 오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곤 했던 것처럼, 검토하지 않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네.(227~228쪽)
27장 인상은 얼마나 많은 방식으로 생겨나며, 인상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생기는 인상에는 네 가지가 있네. 즉, (1) 존재하고,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2)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3) 존재하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4)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네. 따라서 이들 각각 경우에 그 목표를 제대로 맞추는 것은 교육받은 사람의 일인 것이네.(229~230쪽)
그것이 우리에게 고충을 안겨 주는 습관이라면, 우리는 그것에 맞서는 치료법을 발견하도록 시도해야만 하네. 그러면 습관에 맞서기 위해 어떤 치료법을 찾을 수 있겠는가? 반대되는 습관.(230쪽)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이뤄 낼 수 없다면, 나는 고귀한 영예를 이뤄 낸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고귀함이 우리를 넘어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지 않겠는가? (232쪽)
무언가를 원하면서 그것이 일어나지 않을 때, 이런 감정(겪음)이 생기는 것이니까.(232쪽)
요컨대 경건과 자기 이익이 함께 가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도 경건을 유지할 수 없는 점을 마음속에 명심해 둬야 하네.(233쪽)
‘그럼, 어떤가? 우리는 이 사실들을, 즉 일반적인 통념을 유지하고 그것에 반대하려는 논증에 맞서 우리 자신을 방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그걸 반박하겠나? 힘과 여가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이것을 하면 좋겠지만, 두려움에 떨며, 걱정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은 다른 일에 자신의 시간을 전념해야만 하네.(234쪽)
28장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사람들 사이에 무엇이 작은 일이고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분노가 내 계획의 주인이란 말인가?’[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만족시키는 것과 남편에게 복수하는 것, 바로 이것 자체를 자신의 자식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보다 더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네.(237쪽)
<일리아스>는 단지 인상들과 인상들의 사용으로만 구성되는 것에 불과하네. 어떤 인상으로 촉발된 알렉산드로스(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아내를 빼앗아 가고, 어떤 인상으로 촉발된 헬레네는 그와 함께 가기로 한 것이네. 그러면 어떤 인상이 메넬라오스에게 그런 아내를 빼앗기는 것이 이득이었다고 느끼도록 야기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일리아스>뿐 아니라 <오뒷세이아>도 잃어버렸을 것이네!(239쪽)
아무도 다른 사람에 대한 행동으로 인해서 몰락에 이르지는 않기 때문이네. 아니, 그것은 단지 황새 둥지를 부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그의 진정한 몰락은 신중함, 신뢰, 환대법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품위를 잃었을 때였지.(240쪽)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돌아가 보자. 선개념을 가져오너라.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놀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네. 무게와 관련하여 판단을 내리기를 원할 때, 우리는 아무렇게나 판단하지 않네. 또한 똑바른 것인지 굽은 것인지를 판단하고 싶을 때, 우리는 아무렇게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네. 요컨대, 이 영역에서의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할 때, 우리들 중 누구도 아무렇게나 어떤 것을 행하지는 않는다네. 그러나 올바르거나 잘못을 저지르며 행동하느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불운이냐 행운이냐에 관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원인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만, 우리는 아무렇게나 또 성급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네. 저울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판단의 기준과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떤 인상을 받자마자 즉시 그것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네.(241~242쪽)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너는 어떤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가? 자신의 마음에 나타난 모든 인상을 따르는 사람들을 너는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미친놈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이것과는 뭔가 다르게 행동하는가?(242쪽)
29장 견고함에 대하여
좋음의 본질은 어떤 성향의 의지(프로하이레스)이고, 나쁨도 마찬가지로 어떤 성향의 의지이다. 그러면 외적인 것들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의지를 위한 재료들로, 그것들과 관계됨으로써 자신의 좋음과 나쁨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음을 얻을 수 있는가? 재료들을 과대평가하지 않음으로써. 재료에 관한 그 판단이 올바르면 의지를 좋게 만들고, 그 판단이 꼬이고 비뚤어지면 의지를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243~244쪽)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면 아무것도 위협하지 않는 것이 되지만, 내가 이것 중의 어떤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면, 그가 위협하는 것은 바로 나인 것이네. 그러면 내가 두려워할 사람이 누가 남아 있는가? 그는 무엇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 사람인가? 나에게 달려 있는 것들에 대해?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네.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그런 것들이 어떻게 나와 관련이 있을까?(245쪽)
의지 자체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우리의 의지를 눌러 버릴 수 없네.(246쪽)
누군가에게 그의 견해를 바꾸게 할 수 없을 때, 그가 어린아이임을 깨닫고 그가 하는 것처럼 박수를 쳐야 하는 것이네. 아니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조용히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250쪽)
네가 비극배우인지, 아니면 익살꾼인지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무언가를 분명하게 말하라. 이들 둘 다는 공통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비극 배우에게서 반장화와 가면을 제거하고, 또 배우의 그림자 같은 것으로 무대에 오르게 하면 그 비극배우는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남아 있는 것인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면, 그는 남아 있는 것이네.(252~253쪽)
‘주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삶과 죽음, 쾌락과 고통이 그의 주인인 것이네. 그런 것들 없이 카이사르를 나에게 데려오라. 그러면 내가 얼마나 견고한지 보게 될 것이네. 그러나 카이사르가 천둥을 치고 번갯불을 번쩍이며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도착했을 때, 그리고 나 자신이 그것들에 의해 겁을 먹게 되었다면, 도망친 노예처럼 내 주인을 알아보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행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상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안도감을 가지는 한, 나 역시 극장에서 구경하고 있는 도망친 노예와 같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네. 나는 목욕을 하고,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지만, 두려움과 불행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네.(258쪽)
30장 어려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자네에게 “좋은 것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무엇이었는가?’―‘의지의 올바른 활용과 인상의 올바른 사용입니다.’(260쪽)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