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들뢰즈가 참 흐릿하게 다가옵니다. 한 장 안에서도 너무 여러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막 정신없이 뒤엉켜서 이리갔다가 저리갔다가... 하는 와중에 짧은 몇 구절만 읽혔는데요. 그마저도 제가 맞게 알아들은 건지 몰라 어려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생님들께서는 “몇 년을 읽어도, 여전히 어려운 게 들뢰즈니까 그냥 읽어요!”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셨는데요. 들뢰즈 앞에서 어렵고, 모르는 건 당연한 거구나 싶은 마음에 참 위로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
이번에 읽은 <세계 끝의 버섯> 또한, 정신없이 뒤엉키는 문체들과 함께, ‘교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구절들이 참 많았는데요. 먼저는 이 단어들을 둘러싼 여러 인상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숙쌤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부정적인 맥락 안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단단하고 어떤 것들을 무너뜨리고, 해체하고, 더러운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책에서는 교란을 독특한 맥락으로 사용합니다. 가령, “[교란은]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고 항상 인간에 의한 것도 아니다.”(284)라든가, 정아쌤께서 인용하신 구절처럼 “모든 풍경은 교란되어 있고, 교란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285)라는 말들이 그것이었는데요, 칭에 따르면 진보에 대한 기대나 근대 교육, 다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 등이 우리가 교란을 당연히 나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거나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교란은 하나의 시작입니다. 칭에 따르면, 그것은 변형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풍경에 대한 교란’을 하나의 은유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것을 자본주의, 윤리, 종, 세계, 집단 등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요. 가령, 예은쌤께서는 환경 정책과 관련된 수업에서 ‘교란’을 바라보는 선악판단이 얼마나 분명하게 적용되기 어려운지 알게 된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셨고, 영임쌤께서는 17장에서 자신의 팔과 짝짓기 하는 놀라움을 보시며, 종의 경계를 뛰어넘은 경우를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민호쌤께서는 ‘현장성’에 대해 말씀하시며 문제를 해결할 때는 어떤 단순 명료한 진리가 아니라, 사안을 두고 고려하는 그 수많은 배치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우리의 단단한 관념들, 편견, 분할선의 작동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지점에서 어떤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는데요. 책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의 시선을 돌아볼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교란으로 보이고, 그런데 그 교란이 선도, 악도 아니라면,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 느낌인가!”(426)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재겸쌤께서는 이를 두고, 칭이 ‘포자’를 통해 강조하는 것은 결국 개인 자체라기보다 잠재적인 차원에서 이미 존재하는 개인 간의 연결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포자를 ‘개인’으로만 해석했던 거 같습니다.) 영주쌤께서는 또한, ‘행복’이라는 말에 순도 100%의 행복감을 바라도록 훈련된 까닭인거 같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동의가 되었습니다. 해민쌤께서 꺼내주신 RE100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환경 문제에 대해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 ‘대안’을 자꾸만 찾아다니게 되는 거 같은데요.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이 굴레를 좀 벗어나고 싶은데 여전히 기대하는 거 같고, 혹은 이걸 벗어나는 거 자체가 기대일까 싶고... 여전히 결론을 내리고 싶어지는 와중에 으악! 머리가 복잡합니다... 일단은, 버섯이든 들뢰즈든 좀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ㅎㅎ 들뢰즈를 읽다보면 그런 복잡함을 즐기게 되실 겁니다! 머리가 복잡해진다는 건 좋은 현상인 거 같아요. 습관적인 생각의 회로에서 벗어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요.^^ 들뢰즈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애나 칭의 글쓰기가 저는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번 부분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우릴 복잡하게 만들지... 일단 계속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