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조아세계의 자기 모순
풍부해진 물적 조건에서 부르조아지들의 물질과 정신의 이중성이 위선적인 삶으로 드러나는데요, ‘근면, 성실, 절제’라는 부르조아지 윤리의식에서 가부장적 가정유지에 특히 성적 순결성은 필요불가결한 일로 요구되었지만, 부르조아지 스스로 사회적 주인(master), 지배자(lord), 수호자(patron), 우두머리(chef)로 과시하며 특히 성적 방종에서는 자유로웠습니다. 푸코의 <성의 역사>에서 억압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빅토리아시대의 성은 유혹과 금욕 사이에서 증폭되어 활발하게 담론화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기억납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유와 평등을 기반한 사회구조에서 형성된 부르조아계급은 자신들의 사회적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휴식처로서 조화롭고 행복한 가정을 알맹이로 삼습니다. 부르조아 가부장에서 예속적 위계질서는 불평등관계의 모순을 극적으로 보여주지만, 위선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행복에 대한 환상 또한 유지해주지요. 1850년대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화창한 좋은 시절”이라고 추억했을 정도로. 이런 위선과 환상은 모순에 따른 분열증으로 깨어질만도 한데 가족이데올로기는 더 강화된 채 현대에서도 자본주의의 강력한 보루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희생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이 여전하고요.
저는 부르조아의 우월의식과 노동계급의 상대적 열등감이 계급성을 획득해가는 데 있어서 근본적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요. 양자 모두 열등감에 기인한 유사한 방식같다는 이인샘의 말에 동의가 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베품으로써 자기 덕성을 수련하는 탁월한 삶이라면 부르조아는 귀족들을 모방하고자 소유욕망을 펼침으로서 우월의식으로 자기를 확인하는 방식이며, 노동계급은 부르조아적 삶을 모방하며 물질적 교환가치에 물들어가면서 결핍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물과 현상을 똑바로 보는 직능별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가장 지성적으로 뛰어났다는 점은 그당시 명백한 사실이었다는 것.
부르조아들은 지배계급이었던가? 홉스봄은 아직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국가권력, 행정기구의 테두리안에서 질서유지를 하는 자경단을 꾸리거나 정부와 제휴, 협력을 통해 주도권(헤게모니), 결정권을 증대시켜나갔습니다. 경제발전의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대신 할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공화정이든, 절대왕정이든 지배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르조아적 사상을 거부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 진화와 진보는 어떤 관계인가?
1850년대 자유주의시대의 지식의 진보는 과학에 있었고, 철학은 과학자를 돕는 일종의 지적 실험실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있을 정도로 실증주의(콩트)와 경험주의(존 스튜어트 밀)가 일반화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지적, 물질적 진보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정도로 시대의 지배적 개념으로 진보적 이데올로기가 형성되고, 경제학, 통계학, 언어학의 발전과 볼트, 암페어, 와트, 옴, 등 표준화와 계측의 발달은 과학적 확실성의 시대를 보증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인간이 원숭이 변종에 불과하다는 진화론은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박탈한다고 해 전통과 보수주의, 종교세력에는 극단적인 이론이었지만, 지배적인 자유주의사상에서 가장 낯익은 ‘경쟁’의 논리로 대중을 설득하기에 충분했기에, 놀랍게도 전통 보수주의세력에 당당히 승리했습니다. 다윈주의의 대표되는 양육강식의 강자논리는 자유주의자들(자본주의적 경쟁논리)과 사회주의자들(사회혁명이론) 모두에게 논리적 기반이 되어 진화가 곧 진보의 길처럼 인식되어갔다는 점이 저는 의아했습니다. ‘모두가 사회진보의 방식을 따른다면 자유는, 평등은 어떻게 보장하려 했던 것일까?’ 진화와 진보가 같은 방식이면 모든 차이는 힘의 논리로 환원되어 버리고 세상은 균질화되겠지요. 마치 동네가게가 모두 프랜차이즈나 대형마트에 먹히는 현재의 모습처럼. 일리치가 우려했던 자본주의 무한경쟁의 논리기반이 바로 발전과 진보라는 환상이라는 사실이 다시 일깨워졌습니다. 과학적 진화와 사회적 진보를 동일선상에 놓은 것과 각각의 차이를 세밀하게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화는 무계획적이고 무도덕적이며 비효율적인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우연한 결과물로 목적적이거나 예정된 것이 아니다.’(최재천교수 인터뷰 中) 서툴게 정리하자면 진화는 열등과 고등의 관계가 아니며, 목적에 있지 않으며, 어떤 객관적이고 표준적인 진화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살인을 고백하는 심정으로 <종의 기원>을 썼다는 다윈 역시 이를 우려했는지 진화의 매커니즘을 연구하고자 했을 뿐, ‘최적자생존’을 강조한 것은 아니라 합니다. 진화는 개체가 다양한 방향으로 변화하는 과정일 뿐, 진보의 어떤 단계로 비교 동일화하는 것을 의심해야겠네요.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우생학, 인종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사라는 홉스봄의 말처럼 세계 곳곳에 얼마나 커다란 역사적 상흔을 남겼는지요. 아무튼 세속화의 문제와 함께 진화와 진보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로워 보입니다.
“대중은 스스로의 편안과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만 한다면 공화제이건 군주제이건 지지한다. 만약 이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여러 말이 필요 없고 그런 요구를 최초로 약속하는 정치체제를 그들은 지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전통이 그들에게 부여한 도덕상의 자율성이나 정통성에 의하여 규제받는 일도 없었다. 그리하여 국가는 이론적으로는 단지 대중들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차츰 전지전능의 리바이어던이 되어갔다.”(570, 자본의 시대, 에릭 홉스봄, 한길사)
자유주의가 승리한 시대와 뒤이은 시대는 크게 달랐는데 경제적으로 제한 없이 경쟁하는 사기업, 정부개입의 전무, 거대산업체(카르텔, 트러스트, 독점회사) 등, 혹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등으로 개인주의의 시대는 끝나고 집산주의시대가 시작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급격한 변화가 도래합니다. 과학을 기초로 둔 새로운 산업, 인구증가에 따른 내수경제에 집중, 영국만의 독점적 시장에서 국제경쟁체제로의 변화입니다. 이어지는 세계제국주의는 ‘독점자본주의’로 선진국 지배하에 저개발국을 종속적으로 통합시키는 새로운 움직임을 의미합니다. 열강들끼리 국내에 구할 수 없는 원료시장과 자본수출을 다투는 것으로 발전이 곧 종속이 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시대 종결은 노동자들의 실업대책이나 최저임금과 같은 사회보장 요구에 정치적 힘을 행사하게 되었고, 점점 더 강력해지고 매사에 간섭하는 새로운 국가의 형태도 발달해갑니다. 진보는 확실한 지속을 했고, 부르조아적 자본주의, 자유주의적 사회형태를 유지하면서 계속되어왔습니다. 홉스봄은 다음 말로 자본의 시대를 끝맺는데요. 마음이 좀 헛헛합니다. 시간이 되면 홉스봄의 다음 편 <제국의 시대>도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대불황은 막간극에 지나지 않았고, 경제성장, 기술적 과학적 전진과 향상, 그리고 평화가 지속되었다. 그러면 20세기는 19세기의 재현, 보다 빛나고 보다 많은 성공이 약속된 19세기의 재현이 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573)
●다음 시간에는 E. P 톰슨이 쓴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상)권을 144쪽까지 읽어옵니다.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1780년에서 1830년 영국노동계급이 노동의 고통을 어떻게 겪어가며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자신의 계급성을 발견해나가는지, ’악마의 맷돌‘이라 분노했던 시인 블레이크가 영국의 위선을 어떻게 까발리고 있는지, 서로 내용이 달랐던 감리교와 자꼬뱅주의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민중의 생득권을 억압하는지, 생생한 역사현장 속으로 한 걸음 더!
● 발제와 간식은 이인샘(1,2장)과 경혜샘(3,4장)께서 수고해 주시기로 했고요. 후기담당은 혜원샘입니다~
부르주아가 왜 진보와 진화를 연결시켰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전보다 더 개발하고, 발전하고, 문명화하기 위해서는
덜 개발되고, 덜 발전되고, 덜 문명화된 것들은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는 진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제거해도 된다는 정당함을 만들어준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