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상)>도 다음주면 끝이 나네요. 톰슨 선생님의 촘촘하고 세밀한 역사 서술에 처음에는 읽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매번 놀라움을 느끼고 있답니다. 사건이나 주요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 빈민, 어린이, 여성의 삶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역동적인 삶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네요. 톰슨 선생님은 이들의 삶 속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요? 이 질문을 품으며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계속 읽어가고 싶네요! 저번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도 톰슨은 이 세계를 ‘평균’으로 묶어서 읽어내려는 해석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평균’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평균’이 놓치는 것은 무엇인가? 소위 ‘낙관주의자’들은 산업혁명 이후에 생활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 됐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이때 톰슨은 열을 내며 ‘평균’에 가려져 있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줍니다. 농업노동자, 장인, 직조공, 어린이 여성 노동자 등등. 그들은 각자 다른 시간, 공간을 살며 다른 역사를 겪지만, 또 한편으로 그들은 자본에 의해 뿌리 뽑히는 과정을 공통적으로 겪습니다. 톰슨은 이렇게 세세하게 따져가면서 ‘평균’으로 뭉개버리는 게 얼마나 잘못된 해석을 만들어내는지를 저희에게 보여줍니다.
이번 세미나 시간에는 ‘장인’ 계급의 ‘자부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요. 저도 이 ‘자부심’이라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저희 시대에 노동은 권태롭고, 지루하고, 열정을 판매하는 일로 소외되는 느낌이 강한데, 어떻게 자기가 하는 일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걸까 궁금했습니다. 톰슨은 자본 이전의 노동이 어떻게 달랐는지 보여줍니다. 19세기 초만 하더라도 장인은 누군가에게 고용된 채로 원하지 않는 시간에, 억지로 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장인은 ‘자신의 리듬에 따라’ 작업을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재료로 상품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재료로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동직조합(길드)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고, 도제 제도로 함부로 자신의 직업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막아놓았습니다. 그러한 조건에서 장인은 자신의 작업에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부심이 어떻게 사라지게 된 걸까요? 그것은 산업혁명과 함께 진행됩니다. 산업혁명으로 기술혁신이 발생하고, 작업은 고도로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1824년 도제제도가 폐지 되면서 도시에는 도제 수업을 받지 않은 값싼 노동력이 넘쳐납니다. 기술발달과 노동분화, 과잉 노동력은 장인의 기술을 ‘누구나’할 수 있는 것으로 가치를 하락시켜버립니다. 그리하여 “목수들은 ‘매질하는 작업장’의 노동자로 전락하고, 양복제조 노동자들은 고한가격으로 일을 하청주는 중간업자에게 전적으로 귀속되고, 건축노동자들은 청부업자의 수중”으로 떨어집니다. 장인의 지위는 완전히 상실되고, 고용의 불안정과 극심한 경쟁 속에서 저임금 + 과도한 노동의 조건으로 구조가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이처럼 톰슨은 장인의 지위가 산업혁명과 함께 얼마나 빠르게 붕괴되어갔는지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후에 장인 계급이 급진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예고합니다. 지위가 땅 끝까지 떨어진 장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형성하고, 투쟁하는 것을 이후에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세미나에게 주로 이야기 됐던 부분은 ‘어린이노동’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노동’에 관해 선생님들은 부르주아 계급에 의문을 품었는데요. 공장에서 어린 아이들이 거칠고 잔혹하게 다루어지는데, 이토록 ‘무감각’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톰슨이 서술한 장면 중 하나를 보면 아래와 같이 묘사됩니다. “겨우 걸을 수 있는 네살박이 어린 것들이 … 그들의 머리가 멍해지고, 눈은 충혈되어 쓰리고, 약한 애들은 허리가 굽어 기형아가 될 정도로 그 작은 손가락으로 소모기에 철사를 끼워넣는 단순작업을 수시간 계속하였다.” 공장주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어린 아이를 어떤 삶으로 내모는지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에 빠집니다. ‘어린이노동’이 그 당시에 상식이었기 때문에 공장주는 정당화할 수 있었던 걸까요? 다른 존재의 삶을 망가트리고, 착취하는 데에 ‘무감각’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이 질문을 품으면서 또 읽어나가고 싶네요!
@ 공지
8주차(4월 19일) 발제/간식은 장청샘, 소현샘. 후기는 경혜샘입니다.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상)>은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기계제 공업에서 숙련과 미숙련의 구분이 필요없게 되면서 장인과 직조공이 몰락하는 부분은 정말 안타까웠죠. 노동의 평균화로 평가절하된 저임금구조가 온 가족을 노동현장으로 내몰고 어린아이도 15-17시간의 노동으로 자기밥벌이를 해야했다니, 어떻게 이런 잔혹한 고통과 착취를 무감각하게 할 수 있었는지 자본의 시선은 이윤에 눈이 멀면 보이는 것도 안 보이게 되는 걸까요? 노동자 가정은 처참할 정도로 붕괴되고 생활방식은 점점 열악해지는데 어떻게 계급을 인식하고 힘을 갖춰가는지, 다음 권으로 ~~!
뿌리뽑힌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는 것뿐만 아니라 장인으로서 누려오던 자부심마저 앗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노동 계급이 형성되고 저항하게 된 뿌리에는 이런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었던 걸까요? 종교와 공동체 파트에서 그 이야기를 더 해보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