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차에는 『프롤레타리아의 밤』 12장 ‘이카로스의 여행’을 읽었습니다. 1학기 동안 함께 읽었던 이 책은 혼자였다면 절대 완독하기 힘들었을 책이었죠. 우리는 함께 세미나를 하고 글을 쓰고 채운쌤의 강의를 들으면서 어렵고 힘들게 이 책을 읽어냈습니다. 이 책은 ‘지옥의 문’에서 ‘이카리아로의 여행’까지, 매장마다 처음 읽는 것처럼 낯선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 텍스트였죠. 그런데 희한하게 도통 이해가 안 되고 잘 모르는 와중에서도 사이사이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구절도 많았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이 책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채운쌤은 이 책이 ‘벽화’와 같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어두운 동굴 입구만 조금 들여다 본 느낌입니다. 막상 들어가 보면 어마어마한 넓은 공간에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날 것 같은 같은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조에서는 ‘이카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많은 이카리앵들은 약속된 땅을 찾아 프랑스를 떠나 아메리카로 향합니다. 지참금을 들고요. 하지만 약속의 땅은 비참의 땅이 됩니다. 이에 이상적인 공동체를 꿈꾸었던 프롤레타리아들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생시몽주의자들도, 푸리에주의자들도, 이카리엥들도 이 모순으로 원한에 갇히게 되죠. 여기에서는 이카리아가 ‘있다/없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또한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해민샘은 랑시에르가 열정적인 혁명가의 말도, 목수 고니도 아닌 노부인의 목소리로 끝맺은 것이 감동적이라는 말을 했지요. 이 노부인은 신경장애로 실명인 상태인데, 우리는 이 실명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실명은 실제로 눈이 안 보이기도 하지만 유토피아를 보지 않는 실명은 아닌지, 아니면 영원한 유토피아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노부인은 미망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불꽃을 태웠기 때문에 자신의 밤으로 들어갈 수 있었겠지요. 우리는 에필로그를 조원들이 함께 읽고 또 인상 깊었던 구절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랑시에르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요? 채운 선생님은 이 책은 ‘우애’에 대한 책이라고 하셨습니다. 책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나오는데, 랑시에르는 시대에 갇히고, 문서고에 묻혔을 그들의 목소리를 캐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결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우정의 이야기. 저는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서도 그 ‘우정’이라는 지점은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분명 우정이라는 나만의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우정은 말이 잘 통하고, 힘들 때 위로해주고 여행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 정도.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이런 관계는 전혀 우정이 아니라고 하죠. 니체에게 우정은 ‘서로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니체에게는 적과 벗의 경계가 없죠.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나를 극복하는 과정인 동시에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랑시에르는 고니와 노동자 친구들의 우정에 바라봅니다. 고니가 노동자 친구들과 밤에 머리를 맞대고 세미나를 하고 글을 쓰며 무언가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렇게 함께 공부를 하는 과정이 바로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이겠지요. 크크랩도 특히 학인들의 멤버십이 남다른데요. 나이도 20대부터 70살까지 다양하고 직업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른 학인들이 매주 토요일에 모이죠. 함께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우정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요. 저는 가끔 예전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랑시에르는 고니와 노동자 친구들을 통해 ‘노동자의 해방’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모습은 다양하죠. 불쌍하고 연민도 느껴지고 때로는 존경스러워 보이고요. 이 노동자들에게 해방은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존재들의 어떤 해방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낮에 일한 노동자들, 내일 일을 위해 밤에는 잠을 자야 하지만 목수 고니와 친구들은 분할선과는 다른 행위를 했지요. 토론을 하고 글을 쓰면서 친구들과 그들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꿈과 해방에 조금씩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해방’과 ‘꿈’ 나에게 해방은? 나에게 꿈은? 저는 그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입니다. 나는 해방을 위해 꿈을 위해 지금의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걸까요? 문득 습관처럼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나 자문해봅니다. 해방에 이른다는 것은 자유롭게 된다는 의미겠지요. 그렇다면 내면화된 도덕, 타인의 시선, 고정된 습관, 가족에 대한 소유, 직장에서의 인정욕망 등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에 대해 분할선이 흐려질 때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그 과정에 우정과 함께하는 이 공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매 순간 나를 깨워주고 나의 사유를 촉발하고 어제보다 조금은 후지지 않게 살도록 마음을 내게 하는 것이 이 공부인 것 같습니다.
불티 하나로 충분하다. 어디서부터 논리가 의식의 빛과 반란의 불길을 퍼트릴 수 있을 것인가? (…) 민주주의자는 혼잣말하면서 도시를 횡단한다. 그가 독백으로 내뱉는 구절들이 행인들의 호기심을 끈다. 행인 각자가 거기서 어떤 진실을 포착한다. 멈춤 없이, 그는 그들의 실존의 상처를 건드리며 이 상처는 장인의 이익을 감퇴시킨다. (…) 어느 목수에게도, 어쩌면 어느 철물공에게도, 불꽃이 타오를 것이다. 작업장이 닫히고, 작업대가 멈춘다. 수도자는 저녁산책을 시작한다. 이제 그는 다른 이름을 지닌다. 그는 필라델프(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자)라 불린다. (140)
우리는 각자 인상 깊었던 구절을 뽑아 왔는데, 위의 구절은 우리조 재현쌤과 지안쌤이 뽑아온 구절인데, 랑시에르가 말하는 우정을 잘 보여줍니다. 작을지언정 불티 하나로 상대를 감염시켜 불꽃이 되게 하는 실험과 시도들, 그렇게 우리도 우리의 우정을 쌓아가보아요.
<프롤레타리아의 밤>에 나온 다양한 인물들의 구체적인 사유, 활동, 욕망 등을 통해 내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실패로 끝날지라도 꿈을 갖고 실천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네요. 지금은 그야말로 꿈이 없는 허무주의 시대가 아닌가라는 질문도 들었는데요. 무엇이든 다 별거 아니고, 다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는 지금, 어떤 비전을 갖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이것은 혼자 할 수 없고, 도반들과 함께 해야 하겠지요. 그 도반들은 너무나 다르고 견딜수 없는, 그러나 한 배를 타고 있는 자들이네요. 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불티 하나로 상대를 감염시켜 서로를 불꽃이 되게 해보아요.😉 이번 집단 비평도 그런 실험이겠지요? ㅋㅋ 바쁜 와중에 샘의 마음을 담아 잘 정리한 후기 감사해요.👍😊
승연샘 말씀처럼 저도 이번 학기에 읽은 <프.밤>이야말로 세미나를 통해 샘들과 함께 읽지 않았다면 결코 볼 수 없었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 시간 모두가 어둠을 헤매는 상태로 오지만 같이 얘기하다보면 퍼즐도 맞춰지고 서로 다른 해석들로 풍부하게 텍스트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특히 승연샘께서 우정에 대해서 짚어 주신 부분을 읽다가 세미나 자체가 랑시에르 방식의 우애를 체험하고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서 새삼 샘들께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어요 ^^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정성어린 후기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