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독립운동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간디의 물음>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간디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했고, <인도 독립운동사>만으로는 간디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기도 해서였습니다.
<간디의 물음>이라는 책은 간디가 한 일의 의미를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간디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폭력에 ‘걷기’와 ‘단식’이라는 행위로 맞섰는지, 그것이 어떻게 인도 전역에 큰 울림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간디 자서전>에서 간디가 인도에 오기 전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을 읽기로 했습니다. 간디 활동의 근간이 된 시간은 어땠을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슬슬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는 에세이를 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번 에세이는 간디의 생애를 읽고 올라오는 질문을 중심으로 글을 구성해 보기로 했습니다. 간디의 활동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끊임없이 재촉하기만 하는 문명의 속도, 폭력적으로 밀고 오는 자본의 또 다른 식민주의, 저항하고 예리하게 되묻기보다는 무감하고 자신의 것에만 예민한 개인들...간디는 문명의 문제를 꿰뚫어보고, 이것들을 넘어설 수 없다면 국가의 독립만으로는 해결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직감했는지도 모릅니다. 간디의 활동을 보며 질문을 길어 올리는 시도를 한 번 해 보도록 합시다.
다음 시간에는 <간디 자서전> 166쪽까지, <인도 독립운동사>는 끝까지 읽어오시면 됩니다. + 간디의 생애를 읽으며 드는 질문을 나름대로 정리해 옵니다.
=”즐겁게 소금도둑이 되자”
1930년 간디는 ‘소금 행진’을 개시합니다. 영국은 인도 소금을 전매하여 높은 세금을 매겼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인도인들의 몫이었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간디는 ‘소금 사티아그라하’를 전개합니다. “간디가 신중하게 계획하여 연출한 드라마”인 이 사티아그라하는 ‘걷는다’ 그리고 ‘소금을 채취한다’라는 단순한 행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어떠한 폭력도 강제도 없었고, 무척 보편적인 행위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온 인도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간디는 소금 생산지인 구자라트 해안 지방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온 인도가 움직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행진에 동참했고, 300여 개 마을의 촌장들이 영국에 항의하는 의미로 그들의 지위를 포기했습니다. 신문은 간디의 행진을 전세계로 전했고요. 24일간 행진한 간디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직접 소금을 채취했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행위는 위법행위였습니다. 간디는 의도적으로 법을 어김으로써 인간이 자연스러운 행위, 자연의 순수 증여에 인위적인 세금을 매기는 염세법 자체의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나에게 ‘마하트마’ 대신에 ‘소금 도둑’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나와 함께 우리 즐겁게 소금 도둑에 참여하자. (<인도 독립운동사>, p.324)”
간디의 소금 행진은 염세법을 무너뜨렸습니다. 간디는 폭력 없는 전쟁을 실험했던 것입니다. 생명의 필수품이자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조미료인 소금을 국가가 독점할 수 없다는 ‘진리의 힘’을 간디는 보여주었습니다. 소금 사티아그라하는 ‘불법 채취’한 소금을 국민회의에서 싼 가격에 판매하거나 국가가 독점한 소금창고를 습격하는 형태로 이어졌습니다. 그중 유명한 것이 “다라사나의 소금 저장소 습격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미국 UP 통신의 밀러 특파원이 목격하여 전하여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는데요, 습격자들은 어떠한 폭력도 혹은 어떠한 폭력에 대한 저항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명령을 부시하고 천천히 나아갔다. 갑자기 경찰이 덤벼들어 그들의 머리를 쇠로 씌운 곤봉으로 내리쳤다. 단 한 명도 곤봉을 피하기 위해손을 올리지 않았으며 볼링의 핀이 넘어지듯 주저앉았따. 핏자국이 그들의 하얀 옷에 번져 나갔다. 나머지 사람들도 얻어맞아 넘어질 때까지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에는 말다툼도 난투극도 없었다. (330
비폭력을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들이 천천히 생명의 원천인 소금이 모여있는 창고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은 정말 놀랍습니다. <인도 독립운동사>를 보면 간디는 단순히 인도의 정치적 독립만을 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간디는 인도가 독립하기 전, 인도사람들은 ‘인도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인도인’이 되지 않는다면, 사실 될 수 있는 것은 근대 문명인에 불과하죠. 그건 영국 아래에 있든 인도 정부로 독립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간디는 ‘인도인’이 되는 길로 ‘아힘사’를 비롯한 인도의 정신을 정치와 결부시키려는 여러가지 시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스와라지, 스와데시, 사티아그라하와 같은 것들은 그가 생각했던 ‘인도인’이 되는 길이었던 것이죠. 비폭력, 평화,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것.
간디의 행보를 보면 가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완전 독립을 외치다가도 영국 총리와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동료들의 독립운동에 반대하는 등 도움이 안 되는(?) 일을 하기도 하죠. 그래서 찬드라 보스 같은 강경파 민족주의자는 간디를 싫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간디는 ‘비폭력’과 ‘평화’를 일관되게 추구했고, 그 원칙이 지켜지면 다른 방법은 계속 바뀌어도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원칙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이유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였기 때문이었겠죠. 폭력과 고통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감, ‘이래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간디는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상대의 선함을 끌어”낸 것이죠.
지금은 어떨까요? 간디가 단식을 하는 것을 보고 온 인도 사람들이 마음을 움직였고 급기야 폭력 행동을 멈췄다는 이야기를 보며, 우리는 지금 시대에 간디가 나면 어땠을까를 생각합니다. 지금 간디가 단식을 시작한다 해서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 할까? 지금은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굶주림이나 신체적 폭력이 ‘아는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고요. 즉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럴 때 간디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지금 ‘비폭력’과 ‘평화’는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시도되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