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톰슨은 1790년에서 1830년까지의 짧은 기간에 영국 노동계급을 둘러싼 급진적이며 긴박했던 변화를 추적합니다. 상, 하로 나눠진 글은 세심한 자료와 문장으로 영국의 급격한 산업변화와 내외적 관계를 통해 어떻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계급성을 발생시켰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게 합니다. 매 챕터마다 다른 사건인데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오게 하는 구성의 마법으로 초반엔 저는 좀 헷갈렸는데요, 그래서 한 시대를 하나의 관점으로 재단하지 않고 다양한 힘들의 교차로 보고자 애쓴듯한 톰슨의 의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반국교도의 개혁의식과 감리교의 부흥, 잉글랜드인의 전통 “생득권”이념에 깃들어 있는 민중성과 <인간의 권리>에 의한 자각, 반동세력의 공격대상이 된 자꼬뱅주의와 같은 개혁주체들의 변화 등이 맥락을 연결하고 있는데요. 이번주 11-12장은 '감리교가 어떻게 노동계급의 의식과 덕성을 교화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어떤 자발성을 발휘하며 생존을 유지해 왔는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노동자의 계급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라는 톰슨의 질문은 다음 시간 하권에서 좀 더 자세히 풀릴 듯하네요.
.▣ 노동은 '개조된' 공업노동자가 못박히는 십자가
“개조하는 힘을 가진 십자가”(483)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감리교성공은 이중적 효과를 보여줍니다. 산업부르조아지, 즉 청교도의 소명의식을 구현하는 종교이면서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계층의 종교이기도 했으니까요. 교회는 러다이트와 차티스트운동을 겪으며 점차 소요반대, 정치적으로 보수반동화가 되어갑니다. 초기 노동자교육을 담당하였던 일요학교에서는 이제 글쓰기공부를 금지하고 어린이 노동을 용인하며 근면, 절약, 규율을 통해 복종의 정신을 노동자에게 이입하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작업시간, 작업량의 증가, 불량한 작업환경 등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해고로 위협을 해도 저항하지 않을 순종적 인간을 종교의 신앙심으로 길러냅니다. 어린아이마저도 하루 15-17시간 반복노동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육신을 만들어내게 됩니다.초기목사웨즐리조차도 "부는 자만심과 육욕의 욕망, 삶의 오만을 늘일 것이라며 종교의 외형은 남아있더라도 영혼은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492)고 탄식했을 정도로 한쪽은 너무나 비정하고, 한쪽은 너무 참혹합니다.
교회는 영적평등주의를 내세우며 은총과 영광이 선택이 아니라 모두에게 구현된다는 보편교리를 설파합니다. “부의 증가”는 부르조아의 근면, 절약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이라 하고, 가난한 노동자에게는 십자가를 통해 회개하고 내세의 구원과 영광을 위해 근면, 성실, 복종의 자세를 요구하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미덕으로 등장합니다. 노동자가 ‘하나님의 눈’인 양심의 가책에 순종하게 되었다면, 중간계급의 의식은 이익의 효율성을 따지는 공리주의가 지배하게 됩니다. 기계제 공장의 도입은 부르조아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인간성 개조를 요구합니다. 공장제수공업은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제 노동자는 기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기계화된 인간. '장인, 선대제노동자의 발작적(거부와 저항) 노동행태가 체계화되고 충동이 통제받으면서 기계의 규율에 적응하는 규격화된 인간'(498)의 등장. ‘어떻게 그토록 많은 근로인민이 이런 형태의 심리적 착취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의문은 여기서 풀립니다. 공동체에서 뿌리뽑힌 가난한 노동자, 농민들이 현재의 고통을 망각하고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교회가 유일했기 때문이지요.
▣ 노동자의 공동체적 연대의식
결국 그렇게 노동자들이 종교라는 아편에 빠져 무기력해졌던가? 톰슨은 놀랍게도 다른 시선을 보여줍니다. 부흥회를 통해 보여준 성령충만의 히스테리를 억압으로만 볼 수 없다고. 노동자, 농민, 몰락한 장인, 직조기술자들의 '삶의 에너지가 분출되고 흘러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갑자기 저는 좀 뭉클해졌습니다. 독립적 생계와 지위에서 박탈당하고, 일, 놀이, 관계 등 모든 공동체적 전통이 뿌리채 뽑혀 상실되어버린 그런 순간에도 삶에 대한 의욕으로 자기존재와 주변을 돌보려는 민중들의 의지와 저자 톰슨의 세심한 발견이 말이죠. “사회적 인간”으로서 의식, 장인으로서 경건한 자긍심, 자발적 노동이 주는 충만함, 공동체일원으로서의 높은 책임감 등은 그들을 살아오게한 힘이었습니다. 비록 가난한 노동자로 내몰렸지만 그들의 '집단적 태도와 윤리는 상부상조해왔던 일상의 전통, 이웃간의 정, 연대의식'은 내재된 것이었지요. 노동자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었던 공제조합은 우연히 만난 선술집이나 지하작업장 등에서의 무명클럽들의 규칙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런 흐름 속에서 감리교적 열정과 자비, 형제애, 오웬의 사회주의적 주장이 결합됩니다. 작은 공제조합 형식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전국 노동조합연맹의 설립을 촉진하게 되면서 노동자계급의 고유성을 획득해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계급으로서 노동자의 존재는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고 실루엣만 비춰집니다. 다음 장에서 노동계급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궁금해지네요.
▣ 다음시간은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하권을 읽습니다. 13장은 미영, 14장(1-3, 114p까지)은 이인샘이 발제와 간식당번입니다. 후기는 소현샘이 해주십니다. 다음시간에 함께 하는 에프터도 있으니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노동계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면이 아닌 종교로 접근하는 톰슨의 이야기는 새롭고 재미도 있습니다.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규율을 노동자가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적 강제성'을 끌어낸 십자가의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앞 장에서 살짝 언급되었을 때는 감리교의 억압적 교리에 대한 부정적 느낌에 머물러 있었다면 11, 12장에서는 억압적 교리가 또 다른 삶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줘서 놀라웠습니다. 미영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