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아시듯 1학기 마지막 주는 에세이 쓰기입니다. 지난 9주동안 읽어 온 <디가니까야>와 미셸 세르의 <해명>, <천사들의 전설>을 엮어서 써보기로 했는데요. 총 6명의 멤버들이 3:3으로 나눠, 한 팀은 '천사'를 주제로 엮고, 다른 팀은 '고통'을 주제로 엮어 보았습니다. 실제 그날 자리 배치도 천사 대 악마(?)로 나눠 앉았답니다. 참고로 전 악마팀을 선택했구요. 다들 잘 써왔냐구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몇 몇은 그래도 만족스러웠으나 다수는 채운쌤께서 기대에 못 미친다고 실망을 토로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망상과 불안에 대한 분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페이퍼의 많은 부분을 책 내용으로 채운 것을 지적받아 따끔했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써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여하튼 각각의 에세이 마다 주제를 이렇게 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채운쌤만의 참신한 조언이 이어졌습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한 토막을 옮겨보겠습니다.
"고통은 각자의 시대의 연기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불교의 고란, 나의 업은 고정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세상은 변하므로 마음이 편치 않아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고통의 연기는 업이자 무명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그래서 붓다는 무상한가부터 물어본다고 하였다. 한편 세르의 고는 영향받기 쉽고 결과를 알지 못하는 인간이, 그 오만함이 무너지면서 겪게 되는 것이라 하였다. 나의 고는 어떤가? 괴로움이 내게 닥치지 않으면 또는 괴로운게 해결되면 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아니다. 재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함께 한 즐거운 뒷풀이 시간! 후에 한 분 한 분의 소감을 받아 그대로 올려봅니다.
분기마다 에세이 쓰기는 자기 상태를 진단하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준비하는 부담감이 있는 상태에서 세미나 했던 글을 모으고, 자기 문제를 반성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 자기를 달래가며 쓰는 작업이 매번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이번 에세이는 <디가니까야>와 생소한 세르의 책 2권을 소화하며 써야 했지요. 견뎌내기 만만치 않은 이런 환경에 처했을 때, 평소와는 다른 자기 모습이 튀어나옵니다. 이에 에세이 발표 시간은 깜짝 놀람을 경험하기도 하고, 좌절감을 경험하기도 하는 장이 되지요. 이는 평소에 우리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요? 글을 쓰면 자기 생각을 조금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요. 우리 글을 써가며 자기와 세계를 알아가는 기회로 삼아요. -윤순-
'천사와 붓다'라는 주제에 따라 둘을 연결지어보려 애를 썼었는데, 코멘트를 받고 돌아보니 생각보다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지 뭡니까! 물론 글에 정리하기는 실패했지만, 법신-보신-화신으로 이어지는 붓다의 존재 양태와 천사, 방편으로서의 메신저, '고'-천사, '중생'-천사, '도반'-천사, '불제자'-천사 등이 더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로 남았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왕국은 망했지만 불법을 전하는 수행자들은 살아남아 이어져갔다는 이야기로부터 '천사의 사라짐'을 생각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접속력 좋은 불교와 접속 자체인 세르의 철학이 만나니 시너지가 있는 듯합니다. 물론 둘 모두 오리무중이지만, 오리무중과 오리무중의 만나서 새로운 게 생길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 쓰기부터 코멘트와 차담까지, 여러모로 유익함과 감사함이 많이 남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민호-
이번 학기 에세이 미션은 두 가지였습니다. 우리는 '붓다와 천사', '고통과 지혜'팀으로 나눠 준비하고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의 과정과 결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분명히 매주 책을 읽고, 발제와 과제, 생각들을 나누며 접점을 찾고 질문들이 오갔을텐데요. 에세이는 그런것들을 자기식으로 정리하고 펼치는 과정을 담으면 될터인데 다 무화되고 텅비어 버립니다. '에세이'라는 말에 묶여 마음은 경직되어 무거워지고, 행동은 느려지는 총체적 난감으로 끙끙대다 보면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지요. 결국 자신의 질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게 됩니다. 고통에 대해 쓰려면 우선 내가 고통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봐야할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안하고 애쓰는 것은 치심의 작용입니다. 손톱만큼이라도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반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세르도 이런 말을 했네요. '어리석은 자는 예상 가능함을 말한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는 예기치 못한 것을 생각하고 말한다.'(<해명> 방법편. p131)
-유체일탈자 1인 미영-
근 2년간 글쓰기를 제껴두고 있다가 간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유체이탈화법이라고 지적하신 채운샘의 코멘트가 한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더랬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제 문제와 거리를 두고자 했던 무의식의 욕망이 글 전체에 묻어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올 한 해는 극단을 벗어나 저의 적정선을 찾아가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실 샘들의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혜윤-
글쓰기만큼 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정직한 도구는 드문 것 같습니다. 감추려고 할수록 더 잘 드러나게 마련인데도 매번 그 저항감에 주춤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알아지는 게 있고 그런대로 통과해 나가는 게 있는 것일까요? 다시 자세를 낮추고 마음을 모아보고 싶어집니다. 다시 주춤거리고 또 도망가고 싶어지겠지만 그래도 거듭 시도해 봐야겠지요. 함께 하는 도반들이 있어 글쓰기라는 바람을 맞는 일이 고마워지고 있습니다.
-은이-
올해는 오전 오후 풀타임으로 세미나를 하다보니, 텍스트와의 만남이 아주 찐한 것 같습니다!
겉핥기 식이고, 오해가 많고, 글로 잘 종합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처럼 구석구석을 다뤄보니 확실히 많이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신 도반님들께 감사하며
아직 세 번의 에세이가 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봅니다 ㅎㅎ
휴~ 어설프나마 겨우 한고비 넘겼습니다. 심오한 <디가니까야>와 오리무중인 세르의 텍스트를 강의도 없이 서브텍스트도 없이
읽어나가는 이 실험적 공부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면서 그만큼 버겁기도 한 것 같습니다. 도반샘들과 함께 한다는 마음의 강도를 더 키우고, 세미나 시간에 오고가는 대화에도 귀를 더 쫑긋 세워야 할 것 같아요. 힘내보겠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공부 방식에 즐거움이 더 컸는데 에세이 한번 쓰고나니 제가 너무 치우쳐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에겐 아직 3번의 과정이 더 남았다는 거 기억하며 2학기 때는 샘들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겠다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후기 담백하게 옮겨주신 라니샘 고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