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우연과 필연> 나머지 절반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노는 이번에도 우리를 흥미로운 미시적 세계로 인도하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 생명체와 진화에 관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그러한 과학적 사실들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며, 마지막에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합니다. 토론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이 약간 나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 저희는 진화에 관한 모노의 시각이 어떠한지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불변성과 합목적성이라는 속성을 지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화학적 기계’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생명체는 우연적인 요소와 필연적인 요소가 함께 만들어내는 사건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번 부분에서 모노는 그 점을 좀더 부연합니니다.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그 ‘화학적 기계장치’의 구조나 기능은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두 종류의 주요 고분자(단백질과 핵산)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적인 화학적 조작들은 동일한 반응, 혹은 그 반등들의 연쇄에 의해 수행됩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구조적, 기능적으로 동일한 생명체들이 그토록 다양한 형태와 생리적 특징들을 가진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노는 그 실마리를 물리학에서 가져옵니다. 물리학은 어떤 미시적인 존재도 ‘양자적 차원의 요란(搖亂)’을 겪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 요란들이 거시적 시스템 내에 쌓이면 그 시스템의 구조가 변화하게 됩니다. 생명체의 복제 시스템도 이런 미시적 요란과 우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요란들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여 합목적적인 시스템상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모든 요란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아닙니다. 앞에서 우리는 세포 내부의 사이버네틱 시스템에 관해, 그것이 지닌 힘과 복잡성, 정합성에 관해 알게 되었죠. 모노는 요란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돌연변이)는 생명체의 합목적적인 장치가 가지고 있는 이런 정합성을 감소시키지 않는 것들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감소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켜주거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더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DNA 구조에 한번 새겨지고 난 다음에는 기계적으로 충실하게 복제됩니다. 우연적인 사건들은 “순전한 우연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필연의 세계로, ‘가차 없는 확실성의 세계’로 들어”(173쪽)가게 됩니다.
언어와 인간의 진화에 관한 부분도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모노는 ‘상징적 언어의 사용’을 생명계의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꼽습니다. “또 다른 진화의 길을 열어 새로운 세계를, 즉 문화와 관념 그리고 지식의 세계를 창조”(187쪽)한 사건으로 보았죠. 언어의 발달은 중추신경계의 발달과 관련이 있고, 이는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것들과 구분하는 가장 큰 해부학적 특징입니다. 모노는 이 두 요소의 진화 사이에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언어는 단순히 이런 진화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진화를 가능하게 한 “시원적 조건들 중 하나”(189쪽)였을 거라고요.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에서 상직적 의사소통을 잘 하는 자들이 선택받아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선택압’이 창조되었을 거라는 가설에 모노는 동의합니다. 그로 인해 언어 능력을 발달시켜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 능력을 뒷받침하는 생체 기관, 즉 뇌의 발달이 이루어지게 되었을 거라는 가설. 이처럼 신체적 진화와 지성적(?) 진화가 서로가 서로의 전제이자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모노가 언급하고 있기도 하지만, 저는 후반부를 읽으면서 베르그손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뇌의 시뮬레이션 기능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랬는데요, 모노는 시뮬레이션 체험에서 경험되는 비시각적 이미지들을 어떤 상징으로 간주할 게 아니라, “상상적인 체험에 직접 주어진, 주관화되고 추상화된 ‘실재(réalité)’”(225쪽)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실재란, 베르그손이 말하는 ‘지속으로서의 세계’ 같기도 하고, 들뢰즈가 말하는 무의식 같기도 하다고 토론에서 나눴고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모노가 마지막에 말하고 있는 ‘객관적 공리’나 ‘참된 인식’은 과학적인 것만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었지요. 모노는 궁극적으로 ‘과학적인 것’을 강조하고 그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요. 결국 ‘객관적 공리’와 ‘참된 인식’을 무엇으로 볼지, 또 ‘과학적인 것’을 무엇으로, 어디까지 볼지에 대한 질문들을 품은 채 마무리하게 되었는데요, 다음 책인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를 읽으면서 힌트를 얻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 다음 시간에는 <생명의 논리, 유전의 역사> 166쪽까지 읽어옵니다. 발제는 해민샘(~62쪽), 민호샘(63~126쪽), 지숙샘(127~166쪽).
- 간식은 완수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만나요!
모노의 박진감 넘치고 총총 빛이 나는 사유를 따라가는 동안 무척 기뻤습니다. 다만 역시 마지막 챕터에서 ‘참된 인식’을 지향점으로 두고 외롭기로 작정한 채 객관성의 공리를 따라가는 윤리를 말하는 구절이 두고두고 여운이 남습니다. 모노의 심중을 헤아리는 동시에 저희 자신에게 문제를 열어두면서 다음 책을 읽어가야겠습니다! 후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