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 6장~9장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미시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하는데요.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적 차원에서부터 인간의 사상과 같이 과학의 영역과는 멀다고 느껴지는 영역까지, 광대하게 펼쳐지는 논의가 참 어려웠습니다. 헷갈리기도 했고요. 모노가 말하는 ‘지식의 윤리’에 관해 긴 토론이 이어졌는데요. 그만큼 아리송했기 때문이겠죠? 이야기를 나눌 당시에는 모노가 지식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 나름 감동적이었는데요. 다시 읽어보니 비객관적인 개념들에 의존하는 것 없이 지식의 윤리에 입각해 세워지는 사회를 이상적인 왕국으로 표현한 것이 걸리더라고요. 객관성을 상정하고 있고 그 객관성이 과학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요. 하지만 철저하게 객관적인 과학을 지지한 분자생물학자도 베르그손이나 들뢰즈와 교차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여전히 어떤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리송한 질문들이 많이 남아있는 만큼.. 질문들을 중심으로 후기를 작성해보았습니다.
우연, 진화, 객관성의 공리
자크 모노는 생명체를 극히 보수적인 시스템으로 봅니다. 진화에 있어서 우연은 미시적이고 양자적인 사건인데요. 모노는 아주 미시적이고 우연적인 것들이 극히 보수적인 생명체라는 시스템에 진화의 길을 열어주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생명체의 합목적적인 기능에 일으키게 되는 효과들에는 무관심하고, ‘불확정성의 원리의’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합니다. 세미나 중에 모노의 ‘지식의 윤리’가 과학중심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이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생명체가 우연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진화의 방향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노의 논의를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객관성이라는 게 의문시될 때 객관성의 공리는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모노는 인간이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 발달되는 방향으로, 또한 이 능력의 작동을 외부로 표현하는 언어능력이 발달되는 방향으로 아주 강한 선택의 압력이 가해졌음에 틀림었다”(232)고 말하는데요. 그렇게 언어능력을 발달시키며 진화된 인간은 더 이상 자신 이외에는 심각한 적을 갖지 않게 되었고, 인간종 내부에서 일어난 투쟁이 인간종의 자연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행동이 선택의 압력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다는 것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이 중요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진화를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로 이어지는데, 이 부분에서 앞서 말한 불확정성과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지가 의문시되었습니다.
유기체의 진화, 사상의 진화
책의 끝자락에서 모노는 사상들의 진화를 생명계에서 일어나는 진화에 비교합니다. 사상들도 그들의 구조를 영구적으로 보존하려 하며 더 많이 증식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유기체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상이 갖고 있는 성능상의 가치는 팽창력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어떤 사상이 크게 뻗어나간다는 것과 사상이 얼마나 많은 객관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침투력은 인간 정신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구조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침투력을 가진 사상들이란 인간에게 우주의 거대한 내재적 운명 속에서 그의 자리를 배정해줌으로써 인간을 설명하는 사상, 그리하여 이 내재적 운명 속에서 인간의 불안을 해소시켜주는 사상이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신화와 종교, 철학과 과학을 창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모노는 그러한 불안을 진화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경향이라고 봅니다.
지식의 윤리
“객관성의 공리를 참된 지식을 위한 조건으로서 삼기로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지 지식의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객관성의 공리에 따르면, 자의적으로 선택된 이 공리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참된’ 지식이란 아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254)
“모든 물활론적 윤리는 내재적인 어떤 법칙들, 즉 종교적이거나 ‘자연적인’ 어떤 법칙들이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법칙들에 대한 지식 위에 자신들의 윤리를 근거 지우려고 한다. 하지만 지식의 윤리는 이처럼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지식의 윤리는 인간 자신이 그것을 공리로 선택하여 모든 담론과 모든 행동의 진정성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즉 지식의 윤리는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것이다.”(255)
진화에 있어서 외부적인 환경보다는 생명체 안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 흔적을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인지, 진화의 산물인 언어와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을 발휘해 행동과 선택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앞선 질문이 제기됩니다. 아주 미시적인 차원에서의 요란에 의해 예측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행동과 선택은 중요하다는 것일까요?
아직 풀리지 않은 여러 의문들을 가지고 다음 책을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저는 '선택압'이란 말이 참 재미있으면서 그동안 우리가 되풀이해온 물음에 답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샘이 맨 마지막에 던진 물음과도 관련되는 것 같고, 언젠가 세미나에서 나눈 이야기도 떠오르고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택압에 따라 행동(선택)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선택압의 방향을 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을 모노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의문들이 남았지만, 또 다음 책에서 그 의문들을 이어서 함께 풀어가는 시간이 참 즐겁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