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가루가 한참 날리는데, 봄은 빠르게 물러나고 어느새 초여름에 접어들었습니다.
<에픽테토스 강의> 3권의 문장들은 모옵시!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아름답습니다*_*
'우리에게 달린 것과, 달려 있지 않은 것'을 '훈련'한다는 테마는 반복되지만,
개개의 질문들과 상황에 따라 풍성한 답변과 비유가 나오고 있기 때문에 더 쏙쏙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9장이 재미있었는데요.
승진을 위해 로마로 가는 길에 자신을 찾아온 고위 관리에게 에픽테토스는 말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판단을 검토(음미)하고, 만일 뭔가 건전하지 않은 판단이 있다면 이것을 포기하기 위해 항해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목적으로 누군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까? 자신을 위해 어떤 시간을 할애했습니까?(74쪽)
한번이라도 자기 자신의 판단 점검하기 위해, 그것이 건전한지 아닌지 묻고 아니라면 그 판단을 포기하기 위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고 스승을 찾아간 적이 있는가? 상승과 처세가 아니라, 자기 전제와 한계를 직면하기 위해, 놓아버리기 위해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는가?
에픽테토스의 질문은 공부를 하는 저에게도 굉장히 와닿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두 달 간 저희는 월요일과 수요일을 낭송하고, 금요일은 필사를 중심으로 토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오늘 첫 시도를 해보았는데요.
그동안 사진과 글자로만 보고 넘어갔지만, 이번에는 왜 샘들께서 그 문장을 택하고 적었는지 직접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겹치는 문장에서는 생각의 차이도 볼 수 있었고, 공감하거나 새롭게 보게 될 수 있어서 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필사를 보실까요~
3장 좋은 사람이 다루어야만 하는 대상(재료)이 되는 것은 무엇이며, 특히 무엇을 목적으로 훈련해야만 하는가
날이 밝아 집을 나서자마자, 네가 보는 상대방이 누구든 음미하고, 질문을 받은 것처럼 대답하도록 하라. 너는 무엇을 보았는가? 잘생긴 남자 혹은 아름다운 여자? 판단의 기준을 적용하라. 그것이 의지의 영역 안에 놓여 있느냐, 아니면 그것 바깥에 놓여 있느냐? 바깥에. 그것을 던져 버려라. 무엇을 보았는가?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 판단 기준을 적용하라. 죽음은 의지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네. 그것에서 떨어져라. 집정관을 만났느냐? 판단 기준을 적용하라. 집정관이란 어떤 것인가? 인지의 영역 바깥에 있는 것이냐, 아니면 그것 안에 있는 것이냐? 바깥에 있는 것. 그것도 또한 던져 버려라. 그것은 자네와 관계가 없는 것이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으로 실행하고, 날이 밝아 올 때부터 밤까지 이 훈련을 실천했다면, 신들께 맹세코, 우리는 무언가를 성취했을 것이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곧장 다가오는 모든 인상에 대해 입을 쩍 벌린 채 순식간에 붙잡히는 것이 실상이며, 도대체 눈을 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학교에 있는 얼마 안 되는 동안 잠시일 뿐이네.(47~48쪽)
그렇다면 이러한 나쁜 판단들은 우리가 발본원색해야 하는 것들이며, 다음과 같은 일에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야만 하는 것이네. 즉 무엇 때문에 울고, 신음하는 것이냐? 판단이다. 불운이란 무엇이냐? 판단이다. 시민들의 싸움(내란), 분열, 흠잡기, 비난, 불경건,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판단일 뿐, 다른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더구나 우리의 의지 영역 바깥에 있는 것들에 대해 ‘좋은 것이야’ 혹은 ‘나쁜 것이야’라고 말하게 되는 판단들이네. 이러한 판단들을 자신의 의지 영역 안에 놓여 있는 것들로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 주위의 사물이 무엇이든지와 관계없이 자신의 견고한 마음(마음의 안정)을 얻을 것이라는 점을 나는 보증하네.
오히려 정신은 물이 담긴 사발과 같고, 인상은 그 물 위에 꽂히는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물이 흔들릴 때, 광선도 방해를 받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선은 움직이지 않는다. 따라서 눈이 부시더라도 혼란에 빠지는 것은 기술과 덕(아레테)이 아니라, 그것을 담고 있는 혼(프네우마)인 것이네. 혼이 다시 안정되면, 그것들도 안정되게 되는 것이다.(48~49쪽)
5장 병 때문에 학교를 떠난 사람들에 대하여
자네는 모르는가? 질병과 죽음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를 덮쳐 온다는 것을? 그것은 쟁기질하는 농부도, 항해하는 뱃사람도 습격하는 것이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습격당하기를 바라는가? 애당초 무엇을 하든 간에, 너는 반드시 습격당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습격당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편이 나을 것이다.
내 편에서는, 사물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방해받지 않고, 강제되지 않으며, 자유롭기 위해, 내 의지만을 돌보고 있을 때, 죽음이 나를 덮치기를 바라고 싶다. 내가 내 의지에 관여하고 있을 때, 질병이나 죽음이 나를 사로잡았으면 좋겠다.(55쪽)
‘당신이 원했기 때문에, 저는 병에 걸렸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병에 걸리겠지만, 저는 기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셨기에 가난했지만, 그것도 기꺼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바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 관직을 맡지 않았습니다. 또한 한 번도 관직을 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제가 언짢아진 것을 당신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당신이 무엇을 명령 내릴지, 무엇을 보여 줄지 기대하면서, 늘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로 당신께 다가가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제가 이 축제에서 떠나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저는 여기서 떠나가지만, 제가 이 축제에 당신과 함께 참여하고, 당신의 작품을 보고, 당신의 통치 질서를 따르도록 허락해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내가 생각하고, 쓰고, 읽을 때, 죽음이 나를 사로잡았으면 하는 것이다.(55~56쪽)
소크라테스는 말하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농토를 개량하는(훌륭하게 만드는) 데에 기뻐하고, 다른 사람은 자기 말을 개량하는(훌륭하게 만드는) 데 기뻐하듯이, 나는 나 자신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날마다 기뻐한다네.’(56쪽)
‘글쎄요, 저는 철학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알지 못하겠어요.’―누구나 그것이 신이든 인간이든, 누구에 대해서도 결코 탓하지 않는 것,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것, 또 사람이 나갈 때나 돌아올 때나 항상 같은 얼굴 표정을 짓는다는 것 역시 자네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가? 이것들이 소크라테스가 알고 있던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뭔가를 알고 있다거나 가르친다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네. 그러나 누군가가 멋진 구절이나 멋진 이론을 찾고 있다면, 그는 그 사람을 프로타고라스나 히피아스에게 데려갔네. 왜냐하면 누군가가 채소를 구하러 왔다면, 그는 그 사람을 시장 원예사에게 데려갔을 테니까. 그렇다면 너희들 중 누가 소크라테스와 같은 목적(각오)을 가지고 있겠는가? 너희들이 그런 목적을 가졌다면, 기꺼이 병들고 굶주리고 죽을 것이네. 너희들 중 누군가가 예쁜 소녀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면,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네.(57쪽)
7장 에피쿠로스주의자인 자유인 도시의 총독에 대하여
우리는 좋음의 어떤 본질이 앞서 존재하고, 그것을 획득했을 때 혼에서 쾌락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에서 이 혼의 쾌락을 느낄까요? 혼의 좋음에서 느낀다면, 좋음의 있음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좋음과 우리가 그것에서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다른 것일 수는 없는 것이고, 먼저 있는 것이 좋음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생기는 것이 좋음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63쪽)
즉 우리도 또한 이렇게 말하고, 다른 식으로 행동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말하되, 부끄러운 짓을 행합니다. 당신은 이와 반대로 추악한 교설을 세웠으나, 아름다운 일을 행하는지라!(64쪽)
그런데 ‘적합한 행위’(의무)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존재(있음)와 관련된 것이고, 둘째 성질과 관련된 것, 셋째 우선시되는 것 그 자체이다. 그렇다면 우선시되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신을 공경하고, 자신의 부모를 돌보고, 한마디로 말해 욕구하고, 회피하고, 충동을 느끼고, 혐오감을 가질 때, 그것들 각각을 마땅히 해야만 하고, 즉 자연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에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유롭고, 고귀하며,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다른 어떤 동물이 얼굴을 붉히겠습니까? 다른 어떤 동물이 부끄럽다는 인상을 가지겠습니까? 쾌락은 우리의 열성을 불러일으키고, 자연 본성에 따른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종, 수행자로서 이렇나 의무들에 종속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66~67쪽)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 처넣어 버리겠다.’ 이것은 더 이상 이성적인 존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대신에, ‘제우스가 정한 대로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고, 해를 입을 것입니다.’ 어떤 종류의 해입니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외에는 아무런 해도 없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있는 성실함,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염치), 예의를 깡그리 잃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해를 달리 찾을 수는 없습니다.(68쪽)
8장 인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훈련해야만 하는가?
이제 이런 식으로 습관을 들이면, 우리는 진보할 것이네. 왜냐하면 그 인상이 파악될 수 있는 것 이외의 어떤 것에 대해서도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네.(70쪽)
9장 재판을 위해 로마로 가려는 한 웅변가에 대해서
자, 그렇다면, 당신이 자신의 판단에 대해 어떤 고찰과 배려를 했는지를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당신은 지금 크노소스인들의 대리인이 되기 위해 로마로 항해하고 있으며,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지위대로 집에 머무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크고 빛나는 지위를 열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판단을 검토(음미)하고, 만일 뭔가 건전하지 않은 판단이 있다면 이것을 포기하기 위해 항해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목적으로 누군가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까? 자신을 위해 어떤 시간을 할애했습니까?(74쪽)
‘철학자들이 갖고 있는 이론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영혼의 지도적 중심 부분이 자연 본성에 따라 그렇게 살기 위한 것입니다.(75쪽)
계속해서 당신은, ‘나는 에픽테토스를 만났는데, 마치 돌과 동상과 함께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즉 당신은 나를 보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의 판단을 배우고, 이번에는 자신의 판단을 보여 주는 사람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내 판단을 아는 법을 배우고, 나에게 당신 자신의 판단을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하고 나서, 당신은 나를 만났다고 하십시오. 서로 논박을 해봅시다. 만일 내가 나쁜 판단을 품고 있다면 없애 버리고, 당신에게 무슨 판단이 있으면 여기 내놓아 봅시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와 만난다는 겁니다.(76쪽)
10장 어떻게 질병을 견뎌 내야만 하는가?
철학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닥쳐오는 모든 사태에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만일 내가 일어나는 일을 태연하게 견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일어나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80쪽)
철학자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뭐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인가? 즉 ‘그것을 목적으로 나는 훈련을 거듭했고, 이를 위해 나는 단련해 왔다는 것이다.’ 신은 자네에게 말했네. ‘네가 규칙에 따라서 경기를 해 왔는지, 또 적당한 양을 먹었는지, 올바른 연습을 해 왔는지, 그리고 네가 훈련 교사의 지시에 따라 훈련했는지, 그 증거를 보여라.’ 그런 다음, 막상 행동해야 할 때가 오면, 자네는 겁쟁이처럼 꽁무니를 뺄 것인가? 지금이 열병을 앓을 때라면, 그것이 훌륭하게 일어나도록 하라. 갈증을 겪을 때라면, 훌륭하게 겪어 보도록 하라. 굶주릴 때라면, 훌륭하게 굶어 보도록 하라. 그것은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냐? 누가 자네를 방해할 수 있겠느냐? 의사는 마시는 것을 금지하겠지만, 훌륭하게 갈증을 겪는 것을 금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81쪽)
훌륭하게 열병에 걸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것은 신이나 인간을 비난하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괴로워하지도 않고, 잘 또 훌륭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명령받은 일을 이루며, 의사가 도착해도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라는 말을 들어도 지나치게 기뻐할 것도 없는 일이네. 의사가 자네에게 어떤 좋은 말을 했는가? 자네가 좋은 건강에 있을 때, 자네에게 어떤 좋은 일이 있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나쁜 상태에 있구나’라는 말을 들어도 낙담하지 말라. 나쁜 상태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왜 그것이 두려울까? 지금 그것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나중에 가까이 갈 수 없다는 말인가? 자네가 죽으면 우주가 뒤집혀지기라도 한단 말인가?(82쪽)
우리가 항상 손 가까이 두어야만 할 두 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이네. 즉 하나는 의지와 무관한 것은 좋음도 나쁨도 아니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먼저 움직이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따르라는 것이네.
‘내 형제는 나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지 말아야 했어.’ 아니네, 그 사람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네. 하지만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나는 그 사람을 마땅히 해야만 하는 태도로 대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내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네. 아무도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방해할 수 없지만, 자신의 일은 방해할 수 있는 것이네.(83쪽)
11장 약간의 잡담들
신의 질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말하자면 법으로 정해진 어떤 징벌이 있다. 즉 ‘누구든지 의지의 영역 안에 있는 것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을 좋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부러워하고, 욕망에 굴복하며 아첨하게 하고, 근심하도록 하라. 누구든지 다른 사람의 것을 악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통, 슬픔, 탄식, 불행하도록 하라.’ 그러나 우리는 이토록 가혹한 징벌을 받고 떠날 수 없다.
시인이 낯선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명심하도록 하라.
‘나그네요, 비록 그대보다 나쁜 사람이 온다고 해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어느 누구라도 제우스가 보낸 것이라면,
설령 나그네라든가 거지들조차도.’
이 시구는 아버지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손 가까이 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설령 저런 나쁜 사람이 온다고 해도, 아버지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제우스, 아버지의 신이 보낸 것이라고 한다면’ 형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동종의 신 제우스가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도 제우스가 수호신임을 발견할 것이다.(84~85쪽)
12장 훈련에 대하여
어렵거나 위험한 모든 일은 훈련에 적합하지 않으며, 정해진 일을 해내는 데 알맞은 것이 적합하다. 정해진 일을 해낸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욕구할 때나 회피(혐오)할 때에도, 어떤 방해를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욕구해도 원하는 것을 얻는 데에 실패하지 않고, 회피해도 회피하고 싶은 것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86~87쪽)
또한 단지 우리의 의지와 관련 없는 것들에 대해서만 욕구하거나 회피하도록 습관화될 수 있을 정도로 습관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습관에 반대되는 습관을 대립시켜야만 하고, 인상이 우리를 가장 잘 미끄러져 빠져들게 만들기 쉬운 곳에서는, 거기에 대항해 훈련하는 습관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