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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감시와 처벌》 4부 1장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를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완전하고 준엄한 제도’에서 푸코는 다시 감옥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토론 중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감옥이 보편적인 처벌의 형태로 고정될 수 있었던 까닭은 “‘자유의 박탈’이라는 단순한 형태에 기반을 두고”(353쪽)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이고 한결 같은 감정을 통해 자유에 대해 애착을 갖는 사회에서 감옥이야말로 전형적인 형벌이었다는 것이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감옥은 그로부터 시간을 취하고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수량화 가능한 ‘평등주의적’ 징벌이었다는 것.
감옥이 지니고 있는 자유의 박탈이라는 기능이 처벌의 보편적인 형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토론 중 우리는 그것이 사람들이 삶을 일종의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여기게 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푸코는 규율 기술의 확립과 더불어 “인생의 매순간은, 우리가 그것을 분리시키고 다른 순간들과 결합시킬 수만 있다면, 그것에서 항상 유용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260쪽)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말 그대로, 삶이 개발 가능한 무엇으로 출현하게 된 셈이죠.
이러한 관점은 지금 우리 시대에 이르러 더욱 강화된 모습입니다. 어떤 기사를 보니 병역과 관련하여 한국 남성들이 가장 치명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취업준비와 자기계발 기회의 박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자유에 대한 우리의 상식은 생각처럼 나이브하지 않은 겁니다.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것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자유 같은 것도 핵심은 아닙니다. 문제는 내 삶의 경영자로서 시간과 에너지라는 자본을 최대로 운용하여 다양한 차원에서 ‘더 나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고, 그렇게 할 권리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취할 때 우리는 ‘자유’와 ‘권리’를 양적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보았던 다른 기사에서는 미국에서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경우, 교육환경과 부모의 직업 등을 고려하여 그 아이가 벌어들였을 예상 가능한 소득을 따져서 가해자로 하여금 각각의 가정에 상이한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불평등한’ 법에 관해 이야기했었는데요. 여기서도 사망한 아이의 생명, 그의 자유와 권리가 그가 운용할 수 있었을 삶-자본의 잠재성의 정도에 따라 수량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죠. 아무튼 우리는 삶이라는 것이 정말로 개발 가능한 건지, 투입 대비 산출을 계산하는 것이 가능한지, 우리가 기대하는 ‘발전’과 ‘더 나은 결과’가 우리의 존재 역량과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질문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행자’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감옥은 사법의 판결을 이행하는 부수적인 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푸코는 강조합니다. 감옥은 무엇보다도 “개인을 변모시키는 도구”(354쪽)였습니다. “가두고 교정하고 순종하게 만듦으로써, 사회체에서 발견되는 모든 기제들을 재생산”(354쪽)하는 것. 이것이 감옥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임무였고, 이로 인해 감옥은 사법에 대해 독립적인 발언권을 갖게 됩니다. 처벌이 이제 범법자가 일으킨 손실과 정확한 교환가치를 갖는 징벌을 부과하는 것이 아닌 비행자를 교정하고 교화하는 것이 된 이상, 감옥은 법원에게 누구를 얼마나 가두어두어야 할지에 관하여, 어떤 이에게 교정의 작업이 얼만큼 필요한지에 대하여 조언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판결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비행자’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됩니다. 비행자는 그가 저지를 범법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지니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 ‘범죄적 소질’에 의해 특징지어집니다. 다시 말해 “비행자는 그를 특징짓는 올바른 판단근거가 그의 행위라기보다는 그의 생활태도라는 사실에 의해 범법자와 구별”(385쪽)됩니다. 문제는 ‘품행’인 것이죠. 이에 따라 이제 처벌기구는 단순히 범법자의 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자라는 개인의 ‘전기적인 인식’을 추구합니다. 그가 저지른 범행의 정상뿐만 아니라 원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의 성격, 사회적 신분, 교육 등등의 관점 속에서 그들의 생활사에 대한 앎을 구축함으로써 위험한 성향, 사회적 신분과 관련된 나쁜 경향, 그리고 교육의 나쁜 선례들을 확인하는 것이 요청되기 시작합니다.
저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이탈한 개인을 다시 평균으로 끌어들이는 이러한 시스템에 엄청난 사회적 에너지와 인식의 욕구들이 투입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리로부터 이탈하거나 그 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개체를 끝까지, 그의 환경과 개인사와 성향에 이르기까지 추적하여 그를 ‘정상’으로 만들어놓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 그런데 정상이란 도대체 뭘까요.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것들만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이 욕망은 또 뭘까요. 그리고 코드를 위반하거나 그로부터 이탈한 개체들을,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부합하도록 개조하려는 의지는 건강한 것일까요? 규범에 어긋나는 것을 배제하는 것보다도 그들을 정상적 규범에 맞도록 개조하겠다는 발상이 더 잔인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감시와 처벌》 4부 2장을 읽고 과제를 작성해옵니다. 파이널 에세이가 2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카톡방에 공지드렸듯이 각자 어떤 책을 중심으로 에세이를 쓸 것인지, 그리고 대략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쓸 것인지를 '글로 작성해서' 오시면 됩니다. 간식은 수경샘께서 맡아주셨고요, 그럼 일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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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절차탁마 서양철학 후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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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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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절차탁마 서양기초 마지막 시간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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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탁 서양 3학기 열 세 번째 시간(12.12) 공지/ 자유의 박탈, 비행자
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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