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daily rou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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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금요일 414 기후정의파업에 참여하러 세종시에 다녀왔습니다.
먼 거리이고 평일이기도 해서 시간이 남았던 제가 대표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
지난 924기후정의행진 때 피켓도 깃발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서 이번에는 꼭 뭐라도 들고 가자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문구가 적힌 근사한 피켓을 만들고자 했으나...
네, 한 시간의 고민과 삼십분의 제작 끝에 만들어진 저희(저의) 피켓입니다.
뭔가 ‘덜 소유하고 더 존재하라’와 ‘필요가 적을 때 욕망은 더 생산적이 된다’ 같은 문구 사이에서 나름 생각해낸 문장인데, 어쩐지 별로 근사하진 않네요ㅎㅎ. 좀 머쓱하기도 하고요. 의미는, ‘그것’ 없이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고 잘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시장에 넘쳐나는 상품들, 서비스들, 정부가 추진하는 온갖 발전소들과 사치스런 음식들, 전쟁 무기들, 테크놀로지들, 스위트홈을 위시한 부동산, 좋은 차, 좋은 스펙 등등등...
이런 것들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함께 먹고 함께 공부하면서 충만해질 역량이 있음을, 그렇게 나아가고자 함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너무 설명이 길군요, 문구가 부실하다는 증거입니다... 여하튼 그렇습니다!
주최 측에서는 서울 참가자들을 위해 사당에서 세종까지 전세버스를 대절했더라구요(물론 신청비가 있었고요). 무려 11대였으니 약 4~500명 정도 참가했던 것이죠. 저는 조금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맨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세종시 도착. 오전에 흐렸던 날씨가 맑아져서 기분이 들떴습니다. 규모는 약 4000~5000명이었다고 합니다.
비인간 존재들도 참여했습니다! 행진에는 저보다 훨씬 뜨거운 고민과 실존적 문제의식을 들고 나온 이들도 많았죠.
그 목소리들이 궁금하고 듣고 싶었기에 이런저런 플래카드를 찍어봤습니다.
정의당과 녹색당의 깃발이 보였고, 각종 노조 참가자들, 대안학교 학생들, 환경 동아리들, 그 외 수많은 기후정의 관련 단체들에서 삼삼오오 참가하셨습니다. 문탁 네트워크 선생님들도 많이 오셨더라구요. 규문에서 공부하시는 송송이 샘도 만났습니다. 그럼 재미난 문구들이 적힌 피켓들을 구경해보시죠~
경찰들과의 대치도 있었습니다. 너무 안전하고 평화롭게만 흘러가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행동가분들이 행진로 옆 횡단보도에 누우셨고, 당황한 경찰들이 방패로 밀치고 막아서며 몸싸움이 벌어졌네요! 방송도 나오고 긴장감이 올라와 좀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행진 루트를 보시면, 탄소녹색성장위원회부터 시작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지나쳐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앞까지 갑니다. 철옹성처럼 높은 청사 창문으로 희미하게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좀 보였습니다.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이 정책입안자가 아닌 평범한 공무원이라고 해도, 이 목소리들을 그저 군소리로만 듣지 않고, 생각과 각성의 계기로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습니다.
탄소녹생성장위원회 앞에서는 허울과 기만뿐인 ‘탄소 중립 정책’에 대한 항의와 시정의 목소리가 외쳐졌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는 무엇보다도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신설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요구가 외쳐졌습니다.
마지막 자리인 국토부와 환경부 앞에서는 정부의 공항과 케이블카 정책들을 승인한 환경부를 규탄하고 그 ‘생태사업’의 모순성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외쳐졌습니다. 저의 옛 전공이었던 환경공학 연구자들이 많이 가게 되는 환경부를 올려다보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이런 집단행동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어쩌면 정석적인 루트로 환경부에 들어가서 이러한 요구들을 반영한 보다 ‘생태적인’ 정책들을 마련하는 길도 있지 않을까?’
음 그것은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환경부라는 정부기관은 그 시스템 상 기후정의의 문제제기를 듣을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기관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편에 들었습니다. 어쨌든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는 공무원이니까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런 읽기-만나기-듣기-목소리내기가 가능한 공간인가를 생각해보면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안에서도 기후정의의 비전을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 때 실질적으로 정책을 바꾸는 힘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414기후정의파업은 순탄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많은 단체에서 모였고, 대정부 요구사항들을 외쳤습니다. 지역차별적이고 환경파괴적인 개발사업들을 중단하고, 함께 덜 소비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공공재를 보장하라는 간절한 목소리들. 이 행동 자체가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내기를 바라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행동이 바탕에 두고 있는 문제의식과 질문들이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주 미시적인 자리에서부터, 우리 손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공부하고 뭐라도 해보겠다는 열의들이 봄의 새순처럼 쑥쑥 피어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한 활동가의 멘트가 기억에 남네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그는 말했습니다. “정부는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더러 나서라는 얘기겠지요. 그렇다면 나서 줘야죠. 정부의 무능함을 아는 우리가 나서 줘야죠.”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지구 온난화 때문에 당장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 같은 위기감이 있었는데 코로나를 겪고 나서는 오히려 위기에 둔감해진것 같아요. 웬만한건 다 시큰둥해졌다고 해야 하나.
낯가리지만 혼자서도 꿋꿋하게 다녀온 민호샘 덕분에 기후정의파업 현장을 앉아서 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근데 왜 기후에 정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라이라 샘의 질문에 저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그 질문 덕분에 민호샘의 생기 세미나 첫 발제문 시작 부분이 쏙 들어왔습니다. "왜 ‘기후정의’인가? 이 용어는 기후변화와 생태파괴를 ‘환경’ 혹은 ‘생태’라고 일컬어지는 추상적 자연의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미 거기에 얽혀 있는 계급, 지역, 빈부, 인종, 젠더, 장애 등의 다른 부문들과 더불어 사유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위협처럼 묘사되는 기후위기는 사실 굉장히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방식으로 분배되며 환경의 재난은 우리의 사회 속에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펼쳐진다. 그렇기에 환경문제는 시작도 중간도 끝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기후정의행진은 환경에 대한 폭넓은 문제의식 속에서 열린 행사로, 정당, 노조, 지방 주민, 종교단체, 동아리, 장애인 등에서 ‘기후’를 중심으로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행사다. 이번에는 세종의 ‘정부청사’(산업부와 환경부가 있는) 앞에서 열렸고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제도적인 차원의 ‘대정부’ 요구를 전달하고자 한 것 같다." (많은 샘들이 생기 세미나에 올려져 있는 민호샘 발제문과 함께 기욤 피트롱의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를 꼭 일독해보시기를!)
오~~ 전해준 소식 덕분에 414기후정의파업이 있었다는 걸 알았네요.
민호샘, 먼 길 씩씩하게 다녀와 생생한 소식 전해줘 고마워요~~(❤ ω ❤)
이번엔 규문 피켓도 만들었네요^^ 다음엔 함께 규문 깃발을 만들어 봅시다...(* ̄0 ̄)ノ
"함께 살기 위해 멈춰" 라는 구호가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새롭게 무엇을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하던 것을 안 하는 것으로 저항!!!
때로는 이런 저항이 어떤 능동적 행위보다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각자 자기 일상에서 무엇을 멈춰볼까요?
'생기 세미나'에서 함께 논의해 봅시다!!!o(* ̄▽ ̄*)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