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daily rou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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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행진이 있던 지난 9월 시청앞. 저와 민호는 뜻밖의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밀양으로 농활가자!"는 문탁 고은님의 제안이었죠. 문탁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구 길드다 멤버들에겐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가만히 두면 혜화동 안에, 그것도 연구실 안에만 틀어박히는 성향을 지닌 저희들에게 매번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주고, 또 본인들이 벌이는 다양한 활동에 끼워주니까요.
요런 귀여운 포스터가 날아왔습니다! 프로그램은 전체 1박 2일으로, 첫날 송전탑을 답사하고, 둘째날에는 밀양 주민분들의 감 수확을 돕는 거였습니다. 문탁 청년들을 중심으로 15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문탁 친구들과 연결된 청년들이 또 자기 친구들을 데려오고 하는 식으로 꽤 많은 숫자가 모였더라고요.
티켓 구매가 늦어 중간까지는 입석으로 가야 했습니다. 요즘 단풍놀이 하러 밀양 가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차표가 없었나봐요. 서서도 책을 놓지 않는 민호군의 모습(그런데 시선은 폰을 향해 있나요?).
밀양역에서 내려 송전탑 답사를 하러 가는 길.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평소에는 무심히 넘겼을 송전탑들이 유독 눈에 띄네요.
765kv 송전탑. 그 앞에서 밀양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활동가인 남어진님의 설명을 듣고,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을 하신 장소를 앞에 두고 잠깐 동안 묵념을 했습니다. 전압이 너무 세서 피복조차 입힐 수 없는 이 거대한 송전탑은 논 한가운데, 마을 근처에 버젓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송전탑 건설과 관련해서 부족하나마 보상을 얻어낸 것은 밀양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정부와 한전이 보상에 소극적인 이유는 송전탑이 세워지는 곳마다 제대로된 보상이 이루어지면 전기료가 감당할 수 없이 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다시 읽고 청소년들과 이야기할 일이 있었는데요. 송전탑을 답사하고, 어진님의 설명을 듣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면서 일리치가 말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이 밀양에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일리치는 에너지에 대한 의존이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죠. 일리치는 몇몇 속도 자본가들이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매일 도로 위에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전기를 잔뜩 쓰기 위해서는 그것이 발전소로부터 우리 집까지 '옮겨져야' 하고 그러려면 그 가운데에 놓인 사람들은 밀양에서처럼 쫓겨나거나 병들거나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제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배제하지 않고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과장된 수사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감각으로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송전탑 답사를 마친 뒤에는 송전탑 반대 주민이신 권귀영 선생님 댁으로 이동해서 맛있는 카레와 가오리 회무침을 대접받고, 이후에 합류하신 다른 주민분들과 다함께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굉장히 즐겁기도 하고 또 이상하기도(?) 한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이제 밀양에서의 투쟁의 불씨는 잦아들었는데 주말에 시간을 내서 굳이 이곳을 찾아온 청년들의 사연도 궁금했고, 이제서야 처음 찾아온 저희들을 반겨주고 와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보이시던 주민분들의 마음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저는 '아젠다 2.0'을 쓰고 있는 명식, 지원 그리고 문탁에서 한문과 주역 등을 공부하는 동은과 함께 권귀영샘 댁에서 일손이 되어드렸고요. 민호는 감을 따러 갔습니다. 뒤늦게 과수원에 합류해보니 엄청난 양의 감들이...! 소문에 따르면 이날 민호는 가장 열심히 감을 땄다고 인정을 받았다고 하네요ㅋㅋㅋ(누구로부터?)
송전탑과 감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과 함께 제 농활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아래는 이번 밀양 농활 최고의 농부로 꼽힌 성민호 군의 후기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세욧)
솔직히 밀양이 어떤 곳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거의 몰랐었다. 연구실에서 밀양 송전탑 투쟁을 언급하는 것만을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우연히 밀양 농활에 대한 제안을 받고 한참 뒤에야 밀양 송전탑 투쟁에 대한 몇몇 영상과 책을 뒤적여보았다. 당혹스러웠다. 내가 개념으로 텍스트로 배웠던 ‘느린 폭력’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다니!
우리는 전기를 쓴다.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전기는 콘센트에서 나온다. 플러그를 꽂고, 스위치를 켜고, 전기세를 내는 것까지가 내가 아는 전기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전기는 어디선가 생산된다. 서울은 아니다. 경기도에서도 잘 안 보인다. 전기는 저 멀리, 한반도의 가장자리들에 위치한 발전소에서 생산된다. 그리고 운반된다. 트럭으로 안 되니, 고압 송전선을 쓴다. 고압이라 고무 피복은 녹아버리기에 그냥 금속으로 꼬인 전선만 늘어서 있다. 전파가 흘러나온다. 공중에 띄운다. 공중에 띄우기 위해 송전탑이 필요하다. 작은 에펠탑 같은 송전탑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놓이며, 논밭도 지나고, 마을도 지난다. 대도시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당연한 일이겠지만, 송전탑 주변 사람들의 건강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빠지고 암 발병률이 올라간다.
내가 살았던 충남의 시골에서도 송전탑을 자주 보았었다. 불쾌감은 느꼈지만 그 송전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다. 뒤늦게 밀양에 대해 알아보고, 찾아가서 투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조금 알 수 있었다. 발전소가 송전탑을 낳고 송전탑이 발전소를 낳는다. 송전탑을 반대하면 무기를 든 제복 입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전력은 적은 보상금과 전기비 할인으로 합의를 조장한다. 보상금이 높아지면 전체 전기세가 오른다. 공동체는 합의한 사람들과 하지 않은 사람들로 분열된다. 송전탑이 나르는 것은 전기만이 아니다. 이 모든 파괴, 폭력, 회유, 분열을 둘러싼 지난하고 막막한 투쟁을 같이 나르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 비쳤던 밀양은 그런 투쟁들이 이제 흔적이나 추억이 되려고 하는 시기였던 것처럼 보였다. 문탁 네트워크와 관련된 청년들이라고, 버선발로 반겨주시고,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놓고 또 들어주시던 모습에서 무척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밀양에 와 주셔서 너무나 고맙다고, 코로나 기간 동안 너무나 그리웠다고, 구수한 사투리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신기하고 멋쩍게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까지 환대해주시는 걸까? 이분들에게, 가시적인 투쟁이 마무리되었음에도 서울에서 찾아오는 청년들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이쪽 역시, 찾아간다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둘째 날은 열심히 감을 땄다. 종일 감만 땄다. 불그스름한 감나무 밭에 몰려가 감을 다 따버리고 감나무 가지만 남으면 좀 뿌듯하기도 했다. 사다리에 올라서 감을 따다보면 가지들 사이로 송전탑이 보였다. 이쪽 밭에 가서도 보였고 저쪽 밭에 가서도 보였다. 단풍, 감, 송전탑... 조용한 마을이었지만 왠지 오래오래 생각이 남을 것 같다.
잘하셨네요~ 수고하셨어요!❤️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면... 아마도 서로를 이 땅에 잠시 왔다 가는 손님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이지 않을까... 그러니 이 땅이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환대에 대한 감사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한 저항으로 보답하는 게 너무나 당연할 수도. 또 기록과 기억이 다 담을 수 없는 연대의 깊은 연결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밀양 어르신들이 청년들을 맞이한 모습을 뭉클한 맘으로 상상해 봅니다! 아무것도 안 한 우리에게 감나무는 어찌 저리 많은 감을 주었을까나... 감 따느라 힘들었겠지만, 역시 환대 만빵인 농활이었네요! 읽는 이도 절로 기쁨!!
단순한 농활이 아니었네요.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시는 분들께 큰 힘을 드리고 오셨네요. 잊고 있던 사실인데 민호샘의 "송전탑이 나르는 것은 전기만이 아니다. 이 모든 파괴, 폭력, 회유, 분열을 둘러싼 지난하고 막막한 투쟁을 같이 나르고 있던 것"이란 해석을 보니 통찰이 놀랍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하네요. 두 청년께 박수와 지지를 보냅니다.
그랬군요. 내가 쓰는 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