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 : 서로에게 업혀가는 공부
1. 단맛을 쪽쪽 빨아먹고파
규문이 생긴 이래로 불교 공부는 지금까지 쭈욱 계속됐습니다. 내용과 형태가 바뀌고 수업을 듣는 학인들도 달라지긴 했지만 불교 공부의 명맥은 이어졌습니다. 때로는 경전을 읽고, 때로는 논서를 공부했습니다. 짧은 세미나 형태로 시즌별로도 해왔고, 최근 몇 년 동안은 1년 단위로 기획한 프로그램을 주축으로 한 두 개의 세미나를 가미하기도 했습니다. 공부의 프로그램도 그때그때 흘러드는 인연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 최근에는 명상을 하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자비심을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인도 다람살라의 티벳 불교철학대학에서 14년간 공부하신 효암스님과 연이 닿아 함께 ‘아비달마구사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효암스님은 한국에서 출가해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을 다니며 참선을 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방법으로 참선만이 전부일까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가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듣고 한국에 전승되지 않은 삼장을 배우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효암스님이 다니는 불교철학대학은 달라이라마 존자님께서 21세기에 맞는 불교를 펼치기 위해 세우신 학교로, 전 세계적으로 불교 논리 철학에서 최고수준의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스님은 이 과정 중 14년을 마치고 건강검진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어 다람살라로 돌아가시지 못하고 저희와 함께 공부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똑 똑 또로록 똑똑
‘놓치지 않을 거야’(왠지 몇 년 전 절찬리에 끝난 MBC 드라마 ‘밀애’의 김희애 배우의 연기가 떠오르네요.) 이 귀한 기회를 놓칠세라 채운샘은 올해 불교철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본인도 학생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옆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을 듣는 샘을 보면 괜히 어깨동무라도 하고 싶네요. 스님이 계신 동안 최대한 단맛을 쪽쪽 빨아먹으려고 기획한 이 수업은 과연 성공했을까요?
2. 쓴맛 속에서 헤매며
저는 규문에서 불교 공부한지 4년째인데, 올해 수강생이 제일 많습니다. 저처럼 규문에서 몇 년째 불교를 공부한 학인들도 있고, 다른 곳에서 불교 공부를 하다 온 학인들도 있고, 주로 서양철학을 공부하다 마침 수요일 시간이 돼서 합류한 학인들도 있고, 불교계 언저리에서 맴돌다 처음으로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학인도 있습니다. 20대도 있긴 하지만, 평일 하루를 온전히 시간을 낼 수 있는 장년층이 대부분입니다. 올해 수강생이 많은 이유는 ‘아비달마 구사론’을 공부하는, 그것도 티벳불교를 공부한 스님과 함께 하는 기회가 드물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 생각보다 머리가 마이 아프다는 것이었죠. 그렇습니다. 7주간 공부하면서 한 번도 책이 쉽게 읽힌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부하면서 번뇌를 겪고 있습니다.
하나의 논리로 꿰지지 않는 논서를 읽으면서 ‘도대체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 걸까? 이게 내가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이렇게 어려운 걸, 아니, 왜 이렇게 불필요하게 어렵게 써놓은 걸 읽어야 하는 걸까?’ 회의하곤 합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머리 쥐어 뜯어가며 공부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데 우리가 요구하는 ‘하나의 논리로 꿰지는’이 뜻하는 건 정말 하나의 논리일까요? 그저 ‘내가 이해할 수 있는’의 다른 말이 아닐까요? 불필요하다는 것 역시 단번에 이해되지 않음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요? 편하고 익숙한 것만 고집하는 습관에 대한 경계를 통해, 매번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경향을 벗어나고자 한다면 왜 그 공부가 꼭 불교여야만 하는 걸까요?
네. 맞습니다. 그 공부가 불교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아비달마구사론이여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앞서 세미나를 소개한 푸코팀처럼 우린 각자의 끌림과 인연을 따라 푸코를 공부하고 불교를 공부하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가슴을 칠 뿐입니다. 이러다가 규문이 대머리방 되는 것 아닙니꽈? (그럼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로 전기를 생산하면 되겠군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모여 모두 머리를 맞대고 전력을 생산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떠오르네요.) 이 싫으면서 좋은 걸 손에서 놓고 편안해질 것이냐? 이것을 붙잡고 계속 불편할 것이냐? 이것을 잡고도 편안해질 것이냐?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그리고 함께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 과정을 잘 겪을 수 있도록 힘이 돼준다는 것이겠지요.
‘알고 싶다. 격렬하게 알고 싶다’는 마음은 우리 안에서 들끓는 번뇌이지만, 공부하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알고 싶은 이 마음으로 공부를 하지만, 그것이 온통 내 마음을 차지하여, 내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괴로움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추구하여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그것이 나에게 어떤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죽은 지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해서 하나라도 나를 촉발시키는 것이 있다면 생각이, 마음이, 행동이 전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효암스님은 “철학이나 앎이라는 것은 지혜를 동반하지 않으면 오히려 남을 재는 자로 쓰이고 차가운 지성은 남을 찌르는 칼로 쓰일 수도 있다며, 티벳 불교에서는 먼저 논리를 통해서 지식을 지혜로 습득하는 방편을 익히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군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중생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품기 위해 중론을 배운 다음에 구사론을 방편으로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구사론은 중론이나 유식과 같은 논리가 성립되기 이전에 아라한들에 의해서 전승되어 온 것을 집대성해 놓은 것으로, 티벳에서는 구사론을 공부하며 일반 사람들의 경험치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상대방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하게 하는, 그런 바탕이 되어주는 논서인 구사론 공부는 중론과 같은 논리로써 세상을 다 잴 수 있다는 자만심을 일시에 내려놓고, 논리로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방을 가르치고 품을 수 있게 한다고 하네요. 아름답지 않습니까? 홀황하기까지 하네요. 게다가 티벳어를 통해 구사론을 배운 스님과 함께라면 한역의 답답함과 난감함에서 벗어나 좀 더 선명하게 구사론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니, 저는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보렵니다. (효암스님 인터뷰 中)
3. 고진감래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쓴맛이 다한 후에 달콤함이 온다고 하죠. 현재의 상황이 힘들 때 이 말은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나면, 다 지나가고 나면 편안함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지금을 ‘힘듦’으로 규정합니다. 이 규정 속에서 현재는 지나가야 할 시기일 뿐입니다. 알아 가면서 동요하는 현재를 살아갈 때 지금 내가 겪는 것들은 쓰기만 한 것도 달기만 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함께 공부하는 선생님들 등에 업혀 저는 올해도 슬렁슬렁 책을 읽고, 이것저것 주워듣고, 숙제하며 넘어가 보겠습니다. 태생이 겁이 많은 제가 공부 잠깐 했다고 해서 겁이 없어질 리는 없지요. 그치만 겁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세상은 겁 많은 사람도 적은 사람도 똑같이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왕이면 스스로를 덜 가두는 방향으로 움직여보자는 마음을 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겁쟁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인정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생각을 바꿈으로서 여실히 보게 되었고 좀 더 편안해졌을 뿐 아니라, 다른 마음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에 대한 자비심이고 그 힘이겠지요. 이제 앞으로 남은 학기에서는 구사론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삶과 밀접한 이야기들을 펼쳐 나간다고 하니, 새롭게 만날 나와 학인들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 사족이 빠지면 심심하지요. 심심하지 말라고 사족답니다.(누구는 담백한 주방을 선포하던데. 저는 간간한 사족을 붙입니다.)
다 쓰고 나니 다른 학인들에게 불교철학 팀을 소개하는 글이라기보다는 불교철학 팀에게 보내는 제 마음이 되었네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다 살림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살림 이야기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 거지요.
글 / 호정
"우리는 모두 공부하면서 번뇌를 겪고 있습니다." ㅋㅋㅋ 다른 팀에서 이 말을 들었으면 그냥 그런갑다 했을 텐데, 불교팀에서 들으니까 갑자기 확 실감나네요. 아니, 아비달마구사론을 얼마나 머리 뜯으면서 공부하는지 봐서 그런 걸까요? 어쨌든 아라한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한 거라는 걸 공부하는 모습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본심 같은 사족을 붙이자면, 어렵기로 소문난 아비달마구사론의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5온, 12연기 기타등등 뭐가 뭔지도 모르는 개념들이 난무하는데, 그것을 통해 어떤 번뇌를 수행으로 전환할지 너무나도 궁금하옵니다. 다음주가 에세이 발표라고 했죠? 기대기대입니다. ^^
불교팀 화이팅... 그저 화이팅...!! 어렵고 힘들다는 말이 거의 매문단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지대로 공부하고 계시군요. 1년 공부가 끝나고 나면 다들 어딘가 다른 경지에 서 계실 것 같네요! (앗, '고진감래'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말인지도...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글 읽고 불교 철학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하는데 그에 앞서 이렇게나 재미있게 호기심을 당기게 하는 호정쌤은 누굴~~까 그게 더 궁금합니다 ㅎㅎㅎ
몸이 두 개라면 불교팀으로 냉큼 달려가고 싶은데 여기 공부들이 하나같이 만만찮아요. 효암 스님 강의를 듣고 싶긴 하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려나요??
'싫으면서 좋은 걸 손에서 놓고 편안해질 것이냐? 이것을 붙잡고 계속 불편할 것이냐? 이것을 잡고도 편안해질 것이냐?'
다른 공부를 하면서도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든든한 마음!
불교팀 화이팅입니다. 글 쓰신 호정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