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미나의 마무리로 에세이를 쓰시나요? 에세이가 훌륭한 마무리인 건 맞지만, 좀... 식상하지 않나요? 저희 ‘마이너 세계사’는 ‘지도 그리기’가 목표입니다! 이번 시즌은 일명 ‘16주로 완성되는 세계지도 그리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 저희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양한 지도 그리기가 있었지만, 일단 가장 처음에 그린 것과 최근에 그린 것을 비교해보시죠.
괄목할 만한 변화 아닌가요? 여기에 이르기까지 정말 수많은 연습이 있었답니다. 지중해가 너무 넓어지거나 좁아지기도 했고, 그리스는 사라지기도 했고, 아라비아 반도는 인도의 몇 배가 되기도 하고, 한반도의 크기가 부풀려지기도 하고... 축적뿐만 아니라 위도와 경도를 맞추는 것도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연습하고 연습한 결과, 아주 약간 비슷한 형태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하핫!
‘지도 그리기’의 생각지도 못한 즐거움
사실 ‘지도 그리기’를 주요 목표로 내세우긴 했지만, 실제로 공부가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었답니다. 하지만 지도를 그림으로써만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얘기도 같이 들어보시죠.
“지도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지도(地圖)는 삼차원의 구(球)를 이차원으로 펼쳐놓은 거라서 왜곡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쉽게 이해하려면 이차원으로 펼쳐놔야 하죠. 지금까지 계속 다양한 도법으로 지도를 그리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든 그 오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것이죠.
그러나 어차피 지도는 있는 그대로의 지구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면,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지도를 통해 우리의 심상을 명확하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그런 점에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나 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의 ‘타불라 로게리아나(Tabula Rogeriana)’가 부정확한 지도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축적에서 부정확할 수는 있어도 어떤 심상이 그려져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저희도 저희의 관점이 분명히 나타난 지도를 그리는 게 목표입니다.”
위에서부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와 ‘타불라 로게리아나(Tabula Rogeriana)’.
“역사 공부와 지도 그리기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도 없이 책으로만 역사를 접하게 되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어떻게 이슬람이 전파가 되었는지, 그리고 유럽이 얼마나 아프리카와 근접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해서 이론적으론 알겠지만, 생동감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리면서 역사적 사건과 연결시키면 ‘아아~’ 하면서 입체적으로 이해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한 번은 동남아시아의 지도를 그리면서 말레이시아가 바다를 가로질러 비슷한 크기의 두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갔으면 인지하지 못했을 겁니다. 역시 공부는 머리와 몸을 함께 써야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100여 개의 나라를 두 발로 여행하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잠시 멈춘 걸음 중에 이렇게 또 종이 위로 그려보는 손가락 여행도 나름 재미있다. 각 나라마다 나름대로 떠오르는 기억들이 애틋하기도 추억이기도 한데 내 맘속에 들어와 있는 세계지도가 그저 기특할 뿐이다. 전쟁과 사랑이 있고 삶과 우정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는 또 역사가 될 것이다. 부지런히 읽어내어 그들과 조우하고자 한다.”
“역사란 ________”
그리고 저희는 ‘마이너 세계사’란 이름에 맞게 ‘마이너’한 곳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의 세계사, 그러니까 유럽 중심의 세계사조차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수준이지만요.^^;; 나중에 우리만의 세계사, 지도를 그리기 이전에 우선 ‘역사’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일단은 ‘역사’란 것이 어떤 기반에서 요청되고 사용됐는지 ‘역사학의 거장들’을 통해 더듬고 있습니다.
“역사란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기술해놓은 것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이 활용된다는 것이 흥미로웠고 그런 접근 방식에 따라 역사가 다르게 고찰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있는 그대로의 사건’의 기록이라는 것도 우리가 별생각없이 사용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의 사건’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또 어떤 방법론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어떤 사건도 복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들어보는 역사가들이 대부분이다. 역사를 보려는 방법들의 다양함에 그리고 그들의 분투가 멋지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고 신선하기도 하다. 뒤비는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어떻게 설명이 될까? 이 무력감은 압도적이다. 그래서 나는 꾀를 부리기로 했다."(376) 역사를 비판적인 눈으로 읽으라고 한 역사가, 우연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을 통해 역사를 다시 생각하고 있다.”
“루츠 라파엘 덕에 지난 3세기 동안 스물입골명의 사가들의 해석을 따라가 보는데, 낯선 이름들이 너무 많다.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독일의 레오폴트 랑케(1795~1886)는 “역사란 인간에 대한 우리 지식의 총체요,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기존에 있던 모든 사회의 역사는 (…) 계급투쟁의 역사”로 보고 사회적 잉여가치를 획득하고 정치기구를 지배하고 기본적인 법질서와 가치질서를 결정하는데 우위를 차지하려는 투쟁에 주목했다.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석‧평가하여 재구성할 때 확립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문제의식과 함께 시대적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곧 오늘의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너 세계사는 계속 됩니다!
저희 세미나는 세계에 존재하는, 그러나 조명되지 못한 곳의 역사를 저희만의 관점 속에서 다시 읽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거창한 목표만큼 아마 꽤 오랜 기간 ‘마이너 세계사’란 이름의 세미나를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언제든 오시죠! 같이 지도도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협소한 세계사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는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ㅋ 광고는 아니고요. '함께하시면 좋겠다', '안 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입니다.
“일단 마이너 세계사팀이 소수 정예반이라서 마음의 여유라고 할까, 뭐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미나가 평일 오전에 있어서 ‘고요한’ 규문의 분위기에 스며들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한 번 마이너 세미나에 참석해보세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