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짱’을 맡아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이번에 규문 청년들의 ‘짱’을 맡아서 아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민호가 가끔 “규짱”(
규문 청년들의
짱?)이라고 불러주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짱’이든 ‘리더’든 참 입에 안 붙어요. 아무리 소수라 해도 집단을 대표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거든요. 왠지 그런 역할을 맡으려면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짱’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게 귀찮기도 합니다. 음... 여러모로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에요.
이대로 가면 자의식으로 풀풀 넘칠 것 같네요. 분명 ‘짱’이란 자리가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제가 뭐 지구를 지킬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같이 가면 되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도 앞서 올라온 <살림 이야기>처럼 제가 맡은 ‘짱’으로서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점검해보겠습니다.
1.나는 한 마리의 헤드위그
혹시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흰 올빼미 ‘헤드위그’를 아시나요? 대략 이렇게 생겼습니다.
풋풋한 해리도 이쁘고, 헤드위그도 이쁘네요. 해리포터 세계관에서 마법사들은 서로에게 우편물을 주고받는데, 이때 올빼미 같은 애완동물들을 이용한다네요. 갑자기 이 얘기를 왜 하냐면, 극중에서 헤드위그는 연락용 수단이면서 해리가 힘들 때마다 곁에 와서 애교를 부리며 마음을 풀어주거든요. 저는 헤드위그는 아니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채운쌤의 애정 어린 관심을 양분 삼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피노자도 말했죠. 사랑(애정)이란 외부 원인에 대한 관념을 수반하는 수동적 기쁨이고, 수동적 정서는 언제든지 상반된 정서로 이행할 수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채운쌤의 애정 어린 관심은 종종 그 애정만큼이나 거대한 진노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실제 있었던 대화를 의도적으로 입맛에 맞게 편집한 것입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스승들의 숙명이 그러하듯, 저희 스승님께서도 적시에 제자들에게 미션을 내려주시곤 합니다. 누구나 계획을 세우는 연초에도 올해 어떻게 공부할 건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계획을 나누고 정리해서 보내라고 하셨죠. 하지만 연초를 맞이하야 저희는 풀어졌습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 정하신 시간까지 보낼 수 없었고, 스승님은 저희를 애정하시는 만큼 진노하셨죠. 이때 저는 스승님의 문자에 담겨 있는 분노 게이지를 추측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멤버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대한 능글능글하고 뻔뻔하게 이 사태를 넘어가야 하죠. 그래야 스승님의 혈압이 높아지지 않고, 저희의 미소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이밖에도 회의 안건이라든지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시곤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것을 회의에서 멤버들과 공유하고, 좀 더 우리가 능동적으로 행동할 여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정된 것 혹은 회의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을 다시 채운쌤께 말씀드리죠.
사실 이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함께하고 있는 역할이긴 한데요.(특히, 민호가 피뢰침으로서 성능이 매우 훌륭합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매니저 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저라서, 만약 제기하고 싶으신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얘기해달라는 차원에서 소개했습니다.
2.규문의 운영 주체로서 성장 중…
말이 나왔으니, 그 다음에는 ‘회의’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규짱’이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정기적 회의 진행입니다. 오가면서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작년부터 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매니저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목요일 오후 2시에 했고, 올해는 조정될 수 있는데, 화요일 오후에 하기로 했습니다. 혹시 회의 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하신 적은 없었나요?
회의에서는 주로 ‘사업’ 얘기를 합니다. 개인이 공부한 것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서부터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기획하고 런칭할 것인지 등등 공부로 먹고 살기 위한 계획을 함께 공유하고 점검하죠. 그러나 기업가처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공부 공동체에서 물질이 오가는 것은 곧 마음이 오가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어떻게 규문에 많은 선생님들이 오갈 수 있도록 공간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략적으로 선생님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주말에도, 휴가 시즌에도 연구실에 오실 수 있도록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지 신경 쓰는 건 당연하고요. 아, 구체적으로 그런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서로 지적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채운쌤께서 ‘규문 청년들에게 맡기겠다’고 공표하신지 햇수로 2년째(3년인가요?), 아직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채운쌤에 비하면 저희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갓난아기 수준입니다. 가끔 어떤 것들을 놓치고 있는지 지적해주시는데, 정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더라고요. 아마 야단칠려고 마음만 먹으신다면 몇 시간이고 야단치실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나름 큰 변화입니다. ‘이야기할 게 없어서’ 격주에 한 번, 달에 한 번 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 저희는 매주 기본 2시간 이상 회의를 하니까요. 실제로 눈에 보이는 소소한 결과물도 있었죠. 홈페이지도 바꿨고, ‘청지밴드’를 비롯한 여러 컨셉의 프로그램들도 런칭했으니까요. 아마 저희의 기획력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규문도 점점 더 풍성해지겠죠. 그리고 선생님들도 자연스레 규문에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실 거고요?
3.남아있는 문제 : 북극성이 되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죠. 정치는 덕(德)으로 행해야 하고, 그것은 마치 제자리에 있는 북극성을 향해 별들이 향하는 것과 같다고. 이때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지만,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주위 별들이 자신을 향하도록 자기중심적 운동(제자리 운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즉, 주변 별들을 끌어당기는 자기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북극성인 거죠.
저희에게 남은 문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남았다기보다는 항상 유념해야 할 문제라고 해야겠네요. 공부는 통(通)하는 것을 전제로 하죠. 텍스트와 통하고, 같이 공부하는 도반들과 통하고, 이 시대와 통하고 기타 등등. 공부역량과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비례하죠. 앞으로 계속 공부하려면 북극성처럼 어마어마한 자기력을 갖춰야 합니다. 물론 그러려면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상주 연구원으로서 어떤 원칙을 세우고 지켜야 하는지부터 우리 사이의 우정과 공부하러 오시는 선생님들과 더욱 깊은 관계 맺기 등등. ‘짱’으로서 저는 우리 모두가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되도록 총체적으로 신경 써야 하죠.
사실 ‘짱’의 역할이라고 주저리주저리 썼지만, 꼭 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 것처럼 자기가 공부하는 자리에서 나름대로 ‘짱’이 돼야 하죠. 다만 저는 다른 역할들보다 자기중심을 갖기 위해 어떤 태도와 문제를 지녀야 하는지 좀 더 고민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하고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규문에서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고민들을 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민을 품고 계신 분은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항상 열린 자세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 대선 시즌이네요. “소통하는 ‘규짱’이 되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모야.... 나는 악당 까메오야?? ㅜ.ㅜ 저 9년 전 검은머리 사진은 서비스야? ㅠ.ㅠ
항상 저희의 정신적 지주로서 온 마음을 다해 존경하고 있습니다. 부디 다음에도 애정 어린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_ _)
9년 전 사진인데 왠지 미용실 다녀오시고 인증샷 찍으신 어머님 필이 나네요. 미소도 몹시 부담스러… 앗, 죄송ㅠ 부담은 제 몫이니 노여워 마소서!
여하튼 규짱, 파이팅! 규짱 사진 좋네요 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맨 마지막 사진 요즘 대통령선거 벽보에서 봤던 분 같아요.
고전비평공간 규문당 젊은 일꾼 박규짱 오 그럴듯 한데요ㅋㅋㅋ
앗. 그 생각은 못했네요! 입당 신청 받습니다!
규님의 각오와 마음가짐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대표님을 비롯 연구원들의 노고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cm라도 어딘가로 가겠지요~^^ 몸과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규짱의 다짐과 힘이 느껴지네요. 글 재미있게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역시 채운샘의 기운도 팍팍 느껴집니다. 더불어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