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인터뷰는 2월 14일에 개강하는 푸코세미나 홍보를 위해 급ㅈ.... 아니, 작성된 푸코 가상 인터뷰입니다. (세미나에서 함께 읽게 될) '《말과 사물》은 어떤 책인가', '《말과 사물》을 읽으면 뭐가 좋은가', '《말과 사물》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푸코의 책들과 인터뷰들을 부분 부분 참조하여 재조합해보았으니 재밌게 읽어주시고, 푸코세미나에 많은 관심과 그보다 더 많은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0. 푸코와의 우연한 조우
치직 치지직...
여느 날처럼 일과를 마치고 침착맨 유튜브를 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이윽고 온통 빛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필자 : 당신은...? 사이타ㅁ... 아니, 주호미ㄴ... 아니, 푸코 선생님이시군요! 봉쥬르 무슈 푸꼬!!
푸코 : 반갑습니다. 당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내 학생입니까? 당신도 강의를 오전 9시로 앞당긴 것에 대해 항의하러 온 겁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어요. 3백석의 강의실에 5백 명이 몰렸단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아니라고요? 콜레쥬 드 프랑스 강의를 찾아온 외국인 청강생이 아니었습니까?
필자 : 아뇨, 저는 한국에서 온... 시간이 아까우니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책 《말과 사물》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게 되었는데요, 마침 이렇게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으니... 관련해서 몇 가지 질문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푸코 : 《말과 사물》... 저는 항상 《사물들의 질서》라는 제목이 더 좋다고 말했었죠. 아무튼 좋습니다! 대신에 이야기는 짧게 끝내도록 하죠. 곧 도서관에 가야 할 시간입니다.
1. 《말과 사물》, 어떤 책인가?
필자 : 《말과 사물》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66년 출간 당시 선생님의 이 책은 ‘모닝빵처럼’ 팔려나갔었죠. 초판 3,500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갔고, 1년 만에 판매 부수가 2만 부를 넘어서게 되었죠. 1989년에 이 책의 총 발행 부수는 100만 부에 달하게 되는데요(이 사실은 모르시겠군요). 당시 사람들은 해변에서 그 책을 읽었다고, 아니 ‘정말로’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바캉스를 떠날 때 가져갔다고 하고요. 책에 대한 찬사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에 분개한 사르트르는 선생님을 보고 “부르주아지의 최후의 보루”라며 비난하기도 했지요.
필자 : 어떤 책을 읽으니 이렇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말과 사물》은 여러 측면에서 선생님이 큰 노력을 쏟아부은 작품으로, “뚫을 수 없을 만큼 층이 두텁고, 매우 상세하며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책은 데카르트, 콩트, 사드 같은 다양한 사상가들의 저작들을 연결시키는 심오한 철학적 주장을 담고 있으며, 그때까지 잊혀져 왔던 르네상스 시대의 자연주의자들의 저작들과 19세기의 언어학 이론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함으로써 과학사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철학과 과학사에 관련된 박학하고 상세한 주장들은 문학과 미술에 대한 미려한 서술과 우아한 논의와 함께 섞여 있다”(《HOW TO READ 푸코》, 51쪽)라고요. 이 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시죠!
푸코 : 부르주아들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겠군요. 내가 부르주아지 최후의 보루라니! 그렇다면 그들은 벌써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을 텐데요. 무엇보다 나는 《말과 사물》에서 세 가지 과학적 실천을 비교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과학적 실천’이란, 대상의 영역을 정의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알도록 정해진 이상적 주체를 확정하는, 여러 담론들을 구축하고 규제하는 특정한 방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나에게는, 세 가지 구별되는 영역들―자연사, 문법, 그리고 정치경제학―이 어느 정도 비슷한 시기(17세기경)에 자신들의 규칙 속에서 구성되고, 이어서 100여 년에 걸쳐 유사한 변화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특이해보였습니다. [그 책에서 이루어진] 작업은 이질적인 실천들에 대한 엄밀한 비교 연구였습니다. 그 책은 과학적 담론에 내재하는 절차들에 대한 하나의 비교 분석이었던 것입니다(《푸코의 맑스》, 100쪽).
간단히 말해서 말하고 있는 개인들의 관점들이 아니며, 그들이 말한 것이 지닌 형식적 구조들의 관점도 아닌, 그러한 담론의 존재 자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 규율들의 관점에서 나는 과학적 담론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각각의 담론을 일반적으로 일관성 있고 진정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각의 담론이 쓰이고 수용될 때 과학적 담론으로서의―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주의적, 경제학적, 또는 문법적 담론으로서의―가치와 실천적 적용을 갖추기 위하여 어떤 조건을 린네 또는 페티, 또는 아르노는 충족시켜야만 했는지를 질문하고자 했던 것이죠(《말과 사물》 영어판 서문).
필자 : 쉽게 말해 선생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지식(connaissance)을 지식으로 만들어주는 특정한 절차들 및 규율들에 대한 분석이었던 것이군요.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들과 상이한 시대들을 가로지르며 과학적 실천들을 탐구하신 거고요.
푸코 : 그렇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당시 이론적 논쟁의 대부분은 과학적 지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과학적 지식이 가진 토대와 그것의 합리성, 그것의 역사 등이 검토되곤 했지요. 과학사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한정지을 수 있을까 혹은 어느 정도까지 외부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을까? 과학에 대한 합리적인 역사를 생산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특히 현상학의 문제이기도 했고, 맑스주의가 하나의 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하던 맑스주의자들에게도 역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나에게는 그 질문들이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제기되었습니다. 내가 니체를 읽고 그에 대해 공감한 것이 정확히 이러한 지점에서 연결되었지요. 즉, 내게는 합리성의 역사뿐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게 그것의 역사가 얼마만큼 진리에 다가갔는가(혹은 그것이 진리로의 접근을 얼마나 방해했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담론 혹은 지식이 그 자신과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나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제기했습니다. 과학은 경험으로서 이해되거나 분석될 수는 없을까? 즉, 과학은 그 경험을 통해 주체가 변경되는, 하나의 특정한 관계로서 이해되거나 분석될 수는 없을까? 다시 말해, 과학적 실천 속에서 지식의 대상뿐만 아니라, 과학의 이상적인 주체 역시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하나의 과학의 역사적 기원은, 주체와 대상 간의 이러한 상호적 발생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식으로 생산되는 진리-효과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의 답은, ‘정해진’ 단 하나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푸코의 맑스》, 62~67쪽 참조)
필자 : 앎이란 무엇인가, 지식을 지식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지식의 주체가 되는가. 이런 심오한 질문들을 풀어낸 책이 바로 《말과 사물》인 것이로군요!
2. 《말과 사물》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
필자 :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너무너무 어렵네요! 글만 어렵게 쓰는 게 아니라 말도 어렵게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지금 저를 비롯한 세미나원들이 《말과 사물》을 읽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요?
푸코 : 그에 대해서 내가 완벽한 답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쓴 것으로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완전히 여러분들의 자유입니다. 내가 제시하는 방향과 생각, 도식, 몇몇 소묘와 도구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여러분 마음대로 하십시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 말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는 제게 흥미롭지만 제 소관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사용해야 한다는 식으로 제가 규칙을 세워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제 소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가 흥미롭다고 말한 것은, 여러분이 제가 말한 것으로 하는 일이 어떤 식으로든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연결되고 관련을 맺기 때문입니다(《“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6쪽 참조).
푸코 : 대신 내가 어떤 식으로 책을 썼는지, 내가 쓴 책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 나는 이론가라기보다는 실험가입니다. 나는 다양한 연구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연역적인 체계를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씁니다. 나를 줄곧 충동질한 동기는 일종의 호기심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이지요. 앎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만을 보장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쾌락의 활용》 서문 참조) 나 자신이 진리와 맺고 있는 관계를 변형시키는 것, 역사적 자료들을 횡단하며 광기와 범죄와 죽음과 섹슈얼리티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작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내 책들은 언젠가는 이와 같은 것을 하거나, 이와 유사한 어떤 것을 하기를 원하는 이들, 즉 어떤 경우에라도 이러한 종류의 경험에 들어서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장과 공적인 의사표시로서 기능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나의 책들은 “진리-책”(livre-vérité)이나 “논증-책”(livre-démonstration)에 대립되는 하나의 “경험-책”입니다. 그러니 내 책에서 어떤 유용성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여러분 스스로의 경험으로 만드십시오. 그것도 여러분들 자신을 이전의 모습으로부터 뿌리 뽑는 한계-경험으로서 취하십시오. 그것이 현대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것들을 우리의 현실성에 관한 것으로 읽어내도록 하십시오.
필자 : 좋습니다. 다 좋은데요! 그건 선생님의 책들 모두에 해당되는 답변이 아닙니까? 《말과 사물》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해주신다면 ‘푸코 세미나’를 할지 말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만 같거든요.
푸코 : 질문이 많은 학생이로군요... 도서관 이용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좀더 답변해드리도록 하지요. 나는 내 저서들을 편의상 “탐험의 책”(livres d'exploration)과 “방법의 책”(livres de méthode)으로 나눕니다. 탐험의 책에는 《광기의 역사》, 《임상 의학의 탄생》, 《감시와 처벌》 등등이 속하고, 방법의 책에는 《지식의 고고학》과 《말과 사물》 같은 책들이 속합니다. 나는 책들을 (직선적 연속성 속에서는 아닐지라도) 연속해서 씁니다. 탐험의 책들을 쓰는 동안 나는 앞서 이야기한 “한계-경험”에 다가가는 일에 몰두합니다. 역사적 자료들을 횡단하며 나의 개인적 삶의 이력들로부터 비롯된 여러 주제들을 탐구하고, 그로부터 스스로의 존재를 변형하는 경험을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방법의 책들을 쓰는 것은 그러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장비들, 도구들을 가다듬는 작업입니다.
나는 항상 《말과 사물》은 일종의 형식적인 연습으로 간주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 책을 읽는 일은 하나의 연습이 될 수 있겠네요.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들이 스스로의 상식을 깨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무의식적 전제들을 넘어가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개념들 도구들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같은 비-유럽인, 비-전문가들이 유럽의 지성사를 관통하는 텍스트를 소화하는 경험을 해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일 겁니다. 다르게 사유하는 법, 상식의 동어반복과 습관의 중력을 벗어나 제대로 생각하는 법을 연마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또 ‘지식’이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숙고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고요!
필자 : 감사합니다, 푸코 선생님! 충분히 답변이 되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너무 도서관이나 집필실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햇볕도 좀 쬐시고요!
3. 어떻게 읽을 것인가?
푸코 : 잠깐, 잠깐만요. 아무래도 직접 가본 적도 없는 먼 나라에서, 그것도 50년 뒤 미래에 나의 책을 읽는다니 궁금해지는군요. 내 책들을 어떻게 읽을 건가요? 미래에는 어떻게 세미나를 하죠?
필자 : 네! 마치 세미나 진행방식을 소개하기 위해 의도된 것 같은 질문이네요(^^). 전체 세미나 일정은 총 세 단계로 짜여 있습니다.
- 1학기 제목은 바로 “인간 미셸 푸코”. 디디에 에리봉의 평전 《미셸 푸코, 1926~1984》를 읽으며 푸코 선생님의 삶에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의 모든 책이 부분적으로라도 선생님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만큼 먼저 ‘미셸 푸코’라는 인간이 누구인지 알아야할 거예요. ‘미셸 푸코’의 삶과 사상의 여정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도록 매주 꼼꼼하게 연보를 작성해오는 것이 과제입니다.
- 2, 3학기는 “푸코의 연장들”입니다. 2, 3학기에는 《말과 사물》을 읽고 푸코샘의 철학적 도구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훈련을 할 거예요. 에피스테메, 담론, 지식, 고고학, 인간 …… 어려운 개념들에 능숙해지기 위해 매주 텍스트의 내용이 충실히 담긴 노트를 작성하고 개념의 맥락을 놓고 토론합니다. 3학기 마지막 시간에는 《말과 사물》에 나오는 개념들을 세미나원들이 맡아 정리해와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 마지막 4학기 제목은 “푸코와 우리”입니다. 4학기에는 《지식의 고고학》을 읽으며 푸코의 렌즈로 우리의 시대,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실험을 할 겁니다. 아까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책들은 ‘경험-책’이라고 하셨죠? 그 취지를 적극적으로 살려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에 등장하는 개념들과 사유의 연장들, 방법론들을 총동원하여 우리 시대의 담론적 배치를 분석하는 글을 쓸 겁니다. 4학기 10주에 걸쳐 에세이를 구상하고 작성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마지막 시간에 완성된 글을 발표합니다.
푸코 : ……
필자 : 어떤가요... 재밌을 것 같죠?
치지직... 치지직...
앗, 그러고 보니 어느새 광동빌라 인터넷 셧다운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연히 내 앞에 나타난 푸코는 역시나 홀연히 사라져버렸던 것이었다.
-끝-
<말과 사물>보다 어려운 푸코의 인터뷰를 제가 아래와 같이 요약해 보았습니다. ㅋㅋ
<말과 사물>은 어떤 책인가? => (지적으로) 겁나 자극적인 책.
<말과 사물>을 읽으면 무엇이 좋은가? 두뇌건강, 치매예방.
고로 어떻게 읽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읽어야 한다!!^^
어려운 책을 치매예방을 위해 읽어야 한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왜 푸코여야 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왜 푸코여야 하는가! 반드시 푸코여야만 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만, 공부해보시면 절대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푸코의 텍스트는 몬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질문하고자 하는 충동을 매우 강.력.하.게. 자극하거든요!
쉬운 길을 두고 어려운 길을 굳이 갈 이유가 있을까? 때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죠. 그런데 쉽고 어려운 길이 따로 있을까요. 우리가 길 밖에 있지 않은 이상 길 자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푸코를 선택한 게 아니라 푸코를 만났기 때문에, 저처럼 푸코를 만난 사람들과 함께 왜 읽는지를 나눠보려는 거죠. 푸코를 읽으면~ 치매가 예방된다기 보다는 푸코를 읽는 동안 치매 걱정에서 놓여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