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봄 날씨입니다. 그 말인즉슨 저희 규문 청년들이 각자 자기 역할을 맡아 살림활동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계절을 채워가고 있다는 뜻이지요. 좀 이른 감은 있지만, 그간의 활동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사실 저(건화)는 예~~전부터 규문 홈페이지 관리자였습니다. 태곳적 누군가 제게 관리자 아이디와 비밀번호, 그리고 게시판 개설을 비롯한 잡다한 웹사이트 조작법들을 알려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는 늘 규문 홈페이지 관리자였답니다.
그.러.나. 그 역할은 아주아주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관리자로서 제 모토는 오로지 철저한 현상유지! 솔직히 말하자면 채운샘께서 지시하는 일들을 그때그때 수행했을 뿐입니다. ‘게시판 하나 만들어라’ 하면 만들고, ‘배너 올려라’ 하면 올리고, ‘모집 공지 내려라’ 하면 내리고.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채운샘이 홈페이지 관리를 터득하신다면? 제 역할은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죠.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는 IT 담당으로서 제게 나름대로 굵직한 업무들이 있었습니다. 홈페이지를 새로 단장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들에 맞추어 홈페이지를 정비하고, ‘규문톡톡’과 ‘일상다반사’ 코너를 관리하고. 그런 크고 작은 일들을 맡아 하는 걸로 충분했죠.
그런데 새로운 홈페이지 적응 기간이 끝나고, 22년도 강좌와 세미나들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새삼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IT 담당이 하는 일은 뭐지?’ 그리고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홈페이지가 좀 안정되고 나면 제가 그동안의 관성에 따라 다시 ‘현상유지’ 모드에 돌입하게 되는 게 아닐까, 각자 역할을 나눠 맡은 취지는 우리가 연구실의 주인이 되자는 거였는데 관료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처리해서는 그 의미가 퇴색되는 게 아닐까 하고요.
2. ‘관리’ 한다는 것
그러다 알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IT 담당의 역할’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는 군대나 회사가 아니니까요. 저 자신이 적극성을 발휘하는 만큼 제 살림활동의 영역과 경계가 생성되고, 또 제 활동이 구성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IT 활동’이란 우선 그 활동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거로구나. 업무량이나 업무효율보다도 자기 업무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의미부여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구나.
홈페이지가 있는 이상 관리자는 필요합니다. 홈페이지 제작 과정에 클라이언트 측으로 참여해보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서핑하는 무한히 많은 웹사이트들은 모두 누군가의 크고 작은 관심과 보살핌으로 개발되고 또 관리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인터넷 세계에 오늘도 투입되고 있을 어마무시한 양의 그림자 노동을 생각해보면 아득해질 뿐입니다. 만국의 IT 생활자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거북목과 건조한 안구에 평화와 안녕을!
아무튼 웹사이트는 규문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활동 공간이자 소통의 장(場)이요, 외부로 보여지는 우리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연구실 공간을 매일 쓸고 닦는 것만큼이나 웹사이트를 정돈하고 정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 일을 누군가 맡아서 하지 않는다면 꼴이 가관이 되겠죠? 네, 제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관리’를 한다는 건 뭘까요? 매일 공간을 쓸고 닦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들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저도 물론 홈페이지가 깔끔하고 효율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잘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웹사이트 곳곳에 들어가는 이미지 작업들은 포토샵을 다룰 줄 아는 혜원누나가 도맡아 하고 있고 공지와 후기를 비롯한 컨텐츠들로 홈페이지를 채우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관리자가 특별히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뭘까요?
어쩌면 다양한 업무들을 직접 수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홈페이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인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세미나를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멋진 말들이 많이 오간다고 세미나가 잘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다음번에 읽을 분량이 어디까지인지, 학기별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또 세미나를 진행함에 있어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해야 좋은지, 더 많은 세미나원들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판을 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늘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 경우에 그 세미나는 잘 돌아갑니다. 반대로 그런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세미나원들이 아는 게 많아도, 서로 친해도 세미나의 강도와 긴장감은 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관리자란 홈페이지에서 바로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역할을 수행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홈페이지에 어떤 글들이 올라오는지, 또 어떤 댓글이 달리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부터입니다. 규문톡톡과 일상다반사에 업로드될 글들이 제때 올라갈 수 있을지 상황을 파악하는 것도 제가 요즘 조금씩 신경 쓰려 하고 있는 일입니다(사실 이 글도 어제 업로드가 되었어야 했는데, 제 코가 석자네요ㅠㅠ).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왜 후기에 댓글들을 달지 않느냐고, 모집공지 문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느냐고 채운샘께 꾸지람을 듣기도 합니다. 그래도 제가 할 일의 방향이 무엇인지는 대충 감을 잡은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를 늘 주시하고, 거기에 남들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핵심이라는 생각입니다.
3. 홈페이지는 고쳐 쓰는 것!
마지막으로,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며 생긴 사소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홈페이지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홈페이지의 기본적인 골격은 바뀔 수 없는 걸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역할을 주어진 형식 안에서 홈페이지의 기능들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으로 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에 좀더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홈페이지의 틀 자체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웹사이트는, 웹사이트야말로 (새로 사거나 버리는 것 외에 고쳐 쓴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해진 오늘날!) 고쳐 쓸 수 있으며 계속 고쳐 써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를 새단장하는 과정에서 규문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우리에게 적합한 웹사이트를 구상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사용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지요. 예를 들면 저희가 기획할 때 ‘규문톡톡’ 게시글이 메인에 노출되는 개수를 4개로 정했는데, 막상 새로운 연재 코너들을 기획하다보니 업로드 될 글의 숫자와 연재의 빈도에 비해서 너무 적은 숫자였던 겁니다. 또 글쓰기가 규문의 주력 활동인데, 규문톡톡 배너들이 너무 찬밥 신세로 페이지 하단에 깔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요즘에는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맞춰서 홈페이지를 재정비하는 일을 추진 중입니다. 홈페이지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 기대해주시고요(생각보다 사소할지도 모릅니다^^;), 또 뭔가 제안해주실 게 있다면 지체 없이 제게 말씀해주세요.
오호. 점점 살림의 재미에 눈뜨는건가요? 올해는 살림을 통해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확보하는 규문 연구원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이런저런 고민이 많겠지만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길을 내는거겠지요. 연구원들의 활발한 모습 반갑습니다.
규문오
2022-03-11 12:29
이러다 대표님의 존재감이 사라지는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다른 존재감을 뿜뿜하시겠죠!! 어디 가시겠습니까? 연구원들의 적극성에 학인들도 호응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정랑
2022-03-14 10:33
저는 IT 관련 일을 자연스레 하는 사람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간해서 익숙해지지가 않거든요.
제도권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데 익숙해진 신체라 건화샘의 " ‘주어진 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IT 담당의 역할’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는 이 각성이 , ㅣ이렇게 움직이는 신체가 부럽습니다. 그런 유연한 신체에서 글도 유연하게 잘 나오는 거 같아요^^ 잼나게, 그리고 약간씩 찔리면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정옥
2022-03-14 11:58
밍숭맹숭한 아이티 활동을 이렇게 규정하고 보니 재미있네요. 홈페이지를 보고 있어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닌, '내적 봄ㅋㅋ'
찰떡 같은 짤에서 이미 애정이 느껴집니다.
오호. 점점 살림의 재미에 눈뜨는건가요? 올해는 살림을 통해 전체를 아우르는 시야를 확보하는 규문 연구원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오네요. 이런저런 고민이 많겠지만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길을 내는거겠지요. 연구원들의 활발한 모습 반갑습니다.
이러다 대표님의 존재감이 사라지는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다른 존재감을 뿜뿜하시겠죠!! 어디 가시겠습니까? 연구원들의 적극성에 학인들도 호응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저는 IT 관련 일을 자연스레 하는 사람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간해서 익숙해지지가 않거든요.
제도권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데 익숙해진 신체라 건화샘의 " ‘주어진 일’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IT 담당의 역할’이라는 게 따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는 이 각성이 , ㅣ이렇게 움직이는 신체가 부럽습니다. 그런 유연한 신체에서 글도 유연하게 잘 나오는 거 같아요^^ 잼나게, 그리고 약간씩 찔리면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밍숭맹숭한 아이티 활동을 이렇게 규정하고 보니 재미있네요. 홈페이지를 보고 있어도 그냥 보는 것이 아닌, '내적 봄ㅋㅋ'
찰떡 같은 짤에서 이미 애정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