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젠더』를 끝까지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일리치는 역시 많은 질문들을 생겨나게 만들고는 그것들을 모두 해결해주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질문을 가다듬고 생각을 갈무리하는 것은 저희들의 몫이었죠.
“토박이 문화란 간혹 비정할 때도 있지만 양쪽 젠더 사이의 휴전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문화에서도 규방에서는 남자의 감정에 극심한 고통을 가해 앙갚음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휴전과 달리 희소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녀 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여자들은 늘 새로운 패배를 당한다. 물론 젠더가 다스리는 곳에서도 여성은 종속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통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성은 오로지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다.”(이반 일리치, 『젠더』, 사월의 책, 184쪽)
저희는 이 대목 앞에서 멈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마침(?) 이번 주에는 민호, 규창, 저 이렇게 2030 남자 셋이서 세미나를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40년 전에 일리치는 산업사회에서 여성이 언제나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제를 축소하지 않고서는 성평등은 불가능하다고요. 그런데 솔직히 저희들에겐 이 말이 아주 자명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여성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비움 샘들과 일리치를 함께 읽으며 여성의 노동과 돌봄, 여성에게 주어진 낮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선을 지금 우리 청년 세대로 한정하면 어떨까요?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차별과 억압은 존재합니다.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재현하는 미디어나 특정한 성역할을 규범화하는 관습들이 존재하죠.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이 점점 더 평등한 경제적 중성이 되어가는 중인 것 같아요.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이지는 모르겠지만요. 남녀 간 임금의 격차와 기회의 불균등은 여전하겠지만 그것은 여전히 낡은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구시대적 산업이나 기업들의 경우이고. 어쨌든 이제 점점 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리치에 따르면 산업사회는 두 가지 신화를 창조합니다. “하나는 오늘의 사회가 성차에 기초해 있다는 신화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평등한 사회로 향하고 있다는 신화”(186쪽)라고 합니다. 저희로서도 이런 신화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성들 및 다른 여성들과 더 좋은 일자리와 더 많은 월급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는 여성들도 존재합니다. 제 주변만 해도 어느새 ‘엄마’가 되어 있는 친구들이 더러 있거든요.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자발적으로 ‘제 2의 성’의 지위를 받아들입니다.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부는 소비자이고, 보수를 받지도 못하고 자급자족적 삶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하는 ‘그림자 노동’을 부과 받은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출산과 육아, 그리고 엄마 되기는 경제적 주체로서 누리는 평등 및 자유와 본성적인 차원에서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리하여 여성들에게는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주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남기, 엄마가 되기를 선택하고 제 2의 성이라는 지위를 감당하기, 커리어와 출산-육아-돌봄 모두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착취하기.
일리치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을 계속하고, 상품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체제를 유지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가 유지되는 한 그림자 노동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여성들은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거나 구조적 성차별과 그림자 노동에의 예속을 받아들이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 앞에 서게 되는 것이죠. 출산률이 떨어지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적 구조와 우리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형하기를 실험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마음이 없는 호모 에코노미쿠스 여성들과 함께 멸종을 기다리거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제 사회의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자가 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선택지 . 엄마 되기를 포기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살아가거나, 엄마 되기를 선택한 대신 제 2의 성의 지위를 감당하거나, 커리어, 출산, 육아, 돌봄,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못해 몸과 마음이 너덜거리는데도 조금만 더, 하면서 버텨내고 있거나....멸종이 되든 삶의 양식이 변형이 되든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지점에 다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