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의 모체 바깥에서 태어났건, 아니면 그 안에서 태어나 성의 모체로 옮겨져 양육되었건, 여자와 남자는 서로 대면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두 모체는 여자와 남자에게 각기 다른 상대적 힘을 부여한다. 젠더가 다스리는 곳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집단적으로 서로에게 의존하므로 서로 싸우고 빼앗고 물리치더라도 어느 선을 넘을 수 없다. 토박이 문화란 간혹 비정할 때도 있지만 양쪽 젠더 사이의 휴전이다.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을 망가뜨리는 문화에서도 규방에서는 남자의 감정에 극심한 고통을 가해 앙갚음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휴전과 달리 희소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남녀 간 전쟁이 끊이지 않고, 여자들은 늘 새로운 패배를 당한다. 물론 젠더가 다스리는 곳에서도 여성은 종속적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통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여성은 오로지 제2의 성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은 젠더 없는 판돈을 건 이 도박에서 이기든 지든 영원히 불리한 위치에 선다. 이 도박판에서 양쪽 젠더는 발가벗은 채 중성을 하고 있지만, 결국 승리하는 자는 남자다. - 이반 일리치 지음, <젠더>, 허택 옮김, 사월의책, 184~1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