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밴드
Youth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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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세계의 붕괴가 일으키는 두려움은 깊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은 깊은 권태와 비슷하다. 얕은 권태는 불안하게 “바깥을 향해 안달한다.” 깊은 권태에 빠질 때는 현존재가 모조리 우리로부터 분리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불능” 속에는 현존재에게 “여기 이곳에서 행동할 것”을 결단하라고 호소하는 “통지”와 “호출”이 들어 있다.
깊은 권태는 지금은 나는 권태를 느낀다는 상태 속에 방치되고 있지만 현존재를 움켜잡을 수도 있고 저 행동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깊은 권태는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을 움켜잡으라고, 다시 말해 행동하라고 현존재에게 요구한다. 깊은 권태에는 요구하는 성질이 있다. 그것은 말한다. 그것은 목소리가 있다.
-한병철, <타자의 추방>, 이재영 옮김, 문학과 지성사, 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