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밴드
Youth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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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강의를 듣고 후기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으므로 그날의 분위기와 오갔던 말들이 중심이 되는 현장 스케치 정도의 후기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 제 기억력의 한계때문에 아쉽게도 그러지 못할 듯합니다. 후기는 제 이야기로 한정되어야 할 것 같아요.
아래 텍스트는 강의자인 혜원샘의 강의안에 있는 내용입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야 할 것들을 정말 잘 요약해서 제시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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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흙>을 한 줄 요약하면, 후쿠시마 사태 이후 거기 방치된 소를 소 사육사들이 돌보기 위해 방사능 오염구역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인간 자신만이 재해를 겪고, 인간만이 재해를 극복하는 이야기의 연쇄에 어떤 창구를 하나 마련해준다. 그건 바로 소로 대표되는 비인간종이다. 재난은 인간만 겪는 게 아니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의 삶에만 주목하고, 재해로 인해 파괴된 인간의 삶의 복구에만 주목한다. 그래서 다시 재해 이전으로 돌아가려고만 할 뿐,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사유하기를 멈춘다. 그런데 <소와 흙>의 경우 ‘소’라는 새로운 항이 삽입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 질문하게 하고,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재고하게 한다. 다른 종이 재해를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수록, 우리는 인간의 삶만 복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복구하기 혹은 다르게 맺기를 사유하게 된다. <소와 흙>은 그 다른 길을 모색해나가는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인간중심주의를 벗을 어떤 힌트를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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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소 사육사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강렬한 이미지가 하나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언급한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적어볼게요. TV에서 어떤 기자가 마블링이 훌륭한 투플러스 한우를 만들어내는 소사육사를 찾아가 비법이 뭐냐고 인터뷰를 해요. 그는 소의 마블링을 좋게 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항상 틀어놓는다고 말합니다. 소를 더할나위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이죠. 제겐 그게 너무 기묘한 장면으로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있어요. TV프로그램이 얼마나 자극적으로 편집되는지 어느정도는 알고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말이죠.
그런 이미지가 걸림돌이 되어 저는 책을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혜원샘이 위에서 언급했던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날 힌트’는 제겐 또 다른 인간중심주의의 재탕처럼 보였으므로,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고 ‘소와 함께 살아가겠다’라는 선언과 함께 행동에 돌입한 소 사육사들의 얘기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사육사들에 의해 가축으로 키워진 소들은 철저하게 인간종만을 위해 존재했으며 3.11 재난 후에도 그 생각의 기본 골격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소 사육사들은 피폭지의 소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제가 생각하기엔, 또 다른 인간 중심적인 목적(농지보전의 목적과 피폭 동물의 연구적 가치 등)을 마련하므로써 찾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런저런 연유로 인해 저에겐 ‘반대 스위치’가 켜지게 되고 그 순간 제 사유가 멈췄다고 생각합니다. 혜원샘의 강의를 들으며 ‘아차!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하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죠. 재난이 늘 불평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했으면서 너무 쉽게 오래된 이미지에 기억의 자리를 내주었네요.
이쯤에서 후기를 마칠까 합니다. 사육사들과 소의 관계에 대해 골몰하느라 ‘소와 흙’, 나아가 ‘흙과 우리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마음의 여력이 없었어요. 자기변명과 반성으로 얼룩진 후기를 제출한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지만, 이게 현재의 제 모습임으로, 어쩔 수 없다 생각해서 그냥 후다닥 제출하고 갑니다.
도시에서만 죽 살다가 우연히 흘러들어온 시골에 살면서 여러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있어요. 사유는 지극히 얄팍하고 행동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칠어서,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늦은 나이에 이런저런 공부를 시작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열정적으로 멋진 강의를 해주신 혜원샘, 너무 애쓰셨어요. 그 ‘반대 스위치’때문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답니다. 후기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른 샘들의 나눈 이야기들은 규창샘이 아마 댓글로 남겨주시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긴 댓글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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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생님의 질문을 들었을 때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ㅋㅋㅋㅋ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거든요. 애초에 소를 인간의 목적대로 이용하던 소 사육사들이, 원전 사태를 계기로 소를 다르게 키우겠다고 하는 건 기만이 아닌가? 그런 '반대 스위치'가 제 안에도 있었구요. 반대 스위치를 누르며 생각을 넓혀가는 게 <소와 흙> 이야기를 읽는 의의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비인간종과 함께 된다는 건 딱히 인간의 무결함, 순결함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환상에 빠질수록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구요. 중요한 건 어떻게 내가 관계 맺는 것들을 상황이 바뀌었다고 방기하거나 치워버리지 않고 함께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요.
'함께 되기'의 구체적 이야기는...다음 시즌의 <종과 종이 만날 때> 강의를 기대해 주세요! ^^
먼저, 소와 흙을 전해주신 샘들께 감사합니다^^ 청지밴드가 참 좋은 밴드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랑방 같은 곳이 너무 없잖아요. 먼 시답잖은 수다판들은 널렸지만... 돌아보니 공부를 하는 시기에 키워드가 되는 개념들이 꼭 하나씩 있는데, 신기하게 내가 그 개념들과 엎치락뒤치락 할 때면 함께 공부하는 분들도 같이 그러고 있는 게 신기했거든요. 타도 대상들이 점점 바뀌는데, 열거해보면 '자본주의'에서 '주체'로 다시 요즘은 '인간중심주의'로 타도대상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다른 우상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인간중심주의가 뭘까, 그것은 타도되는 대상인가? 이게,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싶습니다.
점점 더 텃밭이 풍성해지는 것 같군요! 이야기를 주고받고, 질문을 공유하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알게 됐다'는 말로 요약되지 않는 것 같아요. 혼란스러움이나 거북함 같은 것을 느끼지 않으면 그게 정말 시답잖은 수다판이 되는 것 같아요. 질의응답(보다는 토론에 가까운) 시간에서 확실히 우리의 지성이 함께 연마되고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은동쌤께서 생각이 멈췄다고 하시는 지점이 어떻게 보면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는 지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건 저희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기도 하고, 아마 다른 선생님들도 강의를 들으면서 저마다 부딪힌 지점이기도 할 거고요. 강의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앎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강의를 완성하는 건 그것을 들어주는 분들의 응답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이야기를 만들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