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와 죽기의 방법이 문제이다 : 복수종의 살기와 죽기에서 어떤 역사적인 상황 속의 실천들이 번성해야 할까? 이 필수적인 물음에 답할 외부는 없다. 자기-확신이라는 신의 속임수 없이 어떻게 절합할지를 알아낸 최선의 답들을 주어야 하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 반려종의 세계는 그 아래로 쭉 중첩하는 거북이와 같은 것이다. 반려종의 접근법은, 무엇이든지 죄다 허용되고 마는 포스트post (혹은 프리pre) 모던의 복잡성이라는 수프로 모든 것을 환원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다른 신체가 아닌 몇몇의 신체로 절합하고, 다른 세계가 아닌 몇몇의 세계에 자양을 공급하고, 필멸의 귀결을 떠안으면서, 코스모폴리틱스에 실제로 관여해야만 한다. 존중respect은 레스페체레respecere – 뒤돌아보기, 관심을 갖기, 타자의 시선과 만나는 것이 스스로 얼굴을 갖게 되는 하나의 조건임을 이해하기이다. 이런 것 모두가 내가 말하는 “고통 나누기”이다. 이것은 게임이 아니고, 오히려 캐리스 톰슨이 “존재론적 안무”라고 부르는 것을 닮았다.